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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정책홍보 포스터 변천사

입력
2014.1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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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책 홍보를 살펴 보면 그 시대의 시대상, 민초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왼쪽 상단 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생충 박멸, 쥐 잡기, 혼분식 장려, 가족계획 포스터. 축구스타 차범근은 부인 오은미씨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다더니 결국 딸 하나와 아들 두리와 세찌, 셋을 낳았다.
국가정책 홍보를 살펴 보면 그 시대의 시대상, 민초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왼쪽 상단 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생충 박멸, 쥐 잡기, 혼분식 장려, 가족계획 포스터. 축구스타 차범근은 부인 오은미씨와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다더니 결국 딸 하나와 아들 두리와 세찌, 셋을 낳았다.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기생충 박멸하여 내 건강 내가 찾자” “과소비로 적자인생 알뜰살뜰 흑자인생”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 안정과 의식주 해결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수선했던 시기 정권은 정책홍보 표어와 포스터를 골목마다 내걸었다. 사실, 홍보라기보다 일방적인 실천의 강요였다. ‘다 같이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마을 단위의 쥐 소탕 작전부터 국민들의 식생활, 심지어는 부녀자들의 피임까지 일일이 나라가 간여하고 통제했다. 지난 시절의 빛 바랜 포스터에서 당시 민초들의 생활상이 읽혀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 보지 못한 탓에 정책 방향이 어영부영 정반대로 뒤집히는 헛다리 역사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던 산아 제한은 88서울올림픽 이후 출산 장려(맨 오른쪽)로 바뀌었다. 현재는 저출산국가로 비상이 걸렸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던 산아 제한은 88서울올림픽 이후 출산 장려(맨 오른쪽)로 바뀌었다. 현재는 저출산국가로 비상이 걸렸다.

60~80년대 피임약까지 무상 배포하며 산아 제한

아이 안 낳자 "둘보다 셋' 출산 장려

인구 증가는 1960년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당시 4, 5명이 보통이던 자녀 수를 셋으로 줄이는 것부터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시작됐다. 일명 ‘3·3·35원칙(3살 터울·3자녀·35세 이전 출산)’부터 70년대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80년대까지, 정부는 피임약과 피임기구를 무상으로 배포하며 인구억제정책을 폈다.

서울 올림픽 이후 ‘소(少) 자녀 출산’에 대한 지속적인 계몽이 효과를 거두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낳지 말라던 정부는 “엄마 아빠, 혼자는 싫어요”와 같이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180도 태도를 바꿨다. 계속되는 출산 장려정책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초 저 출산국가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10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줄기차게 밀어붙인 산아제한정책의 업보를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잡곡밥 등 혼분식으로 건강을 찾자더니 이젠 쌀이 최고라며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잡곡밥 등 혼분식으로 건강을 찾자더니 이젠 쌀이 최고라며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혼분식, 쌀보다 우수" 강조하다 "쌀이야말로 완벽한 식품" 홍보

선생님은 도시락 내용물을 일일이 검사했다. 잡곡밥 대신 흰 쌀밥을 싸 온 사람은 애국심이 없다고 핀잔을 들었다. 곧이어 몸에 안 좋은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키가 쑥쑥 자라고 힘도 세진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을 그 증거로 내세웠다.

혼분식 장려는 쌀 부족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대거 들어온 밀가루는 부족한 쌀을 대체할 식량으로 각광받았다. 영양학적으로도 쌀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식의 대국민 계몽활동은 쌀 소비량이 감소세를 보인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영양도 부족하고 애국심이 결여된 사람만 먹는다던 쌀의 소비는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급해진 정부가‘쌀이야 말로 완벽한 식품’이라며 홍보하고 나섰지만 국민들의 입맛은 이미 밀가루 등 다른 먹거리에 길들여진 후였다.

50년 전 20만원이면 어느 정도일까. 이제는 5억원이 됐다.
50년 전 20만원이면 어느 정도일까. 이제는 5억원이 됐다.
반공정책 포스터와 대북전단지. 공산당은 괴물로, 북에 보내는 삐라에는 미인(탤런트 원미경)을 내세웠다. 국정원 포스터는 산업기술 유출을 다룬 것으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반공정책 포스터와 대북전단지. 공산당은 괴물로, 북에 보내는 삐라에는 미인(탤런트 원미경)을 내세웠다. 국정원 포스터는 산업기술 유출을 다룬 것으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공산당을 괴물로 묘사하기도... 간첩신고 포상금은 50년 만에 20만원서 5억으로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공산당을 끔찍한 괴물로 묘사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같은 구호는 1980년대까지도 교내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단골로 등장했다. 어린이들은 만화 속에서 돼지를 닮은 북한 괴수를 통쾌하게 쳐 부수는 소년영웅에 환호했다. 수영복 차림의 여성 연예인 사진을 활용한 대북 전단지는 김일성 체제에 대한 비난보다 월남을 권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88서울올림픽 초대권을 대신한다는 문구에서는 헛웃음까지 나온다.

대북 햇볕정책을 표방한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반공 포스터의 내용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안보의식 함양 쪽으로 선회한다. 안보의 의미가 북한 공산당뿐 아니라 좌익사범, 테러, 산업스파이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개념으로 바뀐 탓이다. 60년대 20만 원 정도였던 간첩신고 포상금은 2011년 5억 원으로 늘어났다. 70년을 이어온 반공방첩의 역사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촌스럽게 보이지만 정권이 하고 싶은 말은 직설적으로 적혀 있다. 수츨 증대 포스터에 10월 유신을 슬쩍 끼워넣기도 하고 식량 증산을 위해 요소비료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촌스럽게 보이지만 정권이 하고 싶은 말은 직설적으로 적혀 있다. 수츨 증대 포스터에 10월 유신을 슬쩍 끼워넣기도 하고 식량 증산을 위해 요소비료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식량 증산은 한반도의 오랜 숙제였다. 요소비료는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인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작물의 생육을 촉진시키는 장점이 있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유기농 작물을 선호하는 요즘 세태와 비교하니 쓴 웃음이 나온다 (아래 왼쪽 ). 수출과 소득증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포스터에 ‘10월 유신’을 슬쩍 끼워 넣었다(위 왼쪽). 80년, 신군부 집권과 동시에 출범한 사회정화위원회의 과소비 추방 포스터. 과소비가 우리살림을 좀먹는다고 홍보하는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기업 등으로부터 9천500억 원을 받아 챙겼다(위 오른쪽 ). 1975년 농수산부가 게시한 쥐 잡기 안내문. 모든 가정이 일시에 한집도 빠지지 말고 참여하자는 문구가 인상적이다(아래 가운데). 기생충 박멸의 필요성과 예방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홍보문.(아래 오른쪽)

사진부 기획팀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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