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상흔이 채 사그라지기 전에 각종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고 유형이 다양할 뿐 아니라 원인과 피해 규모 모두 후진국형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고가 대부분이라 더 안타깝다. 세월호가 안전에 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정책이 성장보다 안전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안전을 위한 투자비 마련을 위해 증세를 하는데 반대한다고 답했다. 안전을 둘러싼 제반 환경이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그 비용을 부담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적절한 투자를 감안하지 않고 무슨 수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율배반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한 재원조달 없이 안전시스템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천적으로 ‘무상 안전’은 어디에도 없다. 정확히 20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겪으며 우리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구조물의 건설과 유지관리 과정에서 안전을 위한 충분한 투자와 점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젠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상식이었다. 한강 교량의 안전도가 현재 수준으로 높아진 것은 사고 후 지금까지 안전 점검과 관리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전문 인력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안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지불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빈번한 나라는 물론 미국과 유럽 각국 또한 다양한 위험요인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전문가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최적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들고 사후 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한번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도 주기적으로 개선 보완하고 관리 인력과 장비 역시 적절한 시기에 업데이트하는 절차를 철저히 되풀이한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해서 안전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완벽에 가깝게 시공된 시설물이라도 언젠가는 내구성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자연재해 등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사전에 100% 근절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에 수반되는 투자에 우리만큼 인색하지 않다는 얘기다.
일부의 근거 없는 낙관과는 달리 ‘공짜 안전’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당장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한다면 그 결과는 그간 수도 없이 목격해온 참사일 수 있다. 안전에 관한 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걸맞은 대비태세를 수립하는 것이 기본이다. 입으로는 안전한 나라를 외치면서도 정작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간과하고 당연히 집행돼야 할 투자를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은 여전히 도처에 산재해 있다. 대형 건물과 구조물을 대상으로 한 안전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반면, 소규모 구조물에 대한 안전관리는 보완할 부분이 많다. 지은 지 오래 된 노후 건물이 늘고 있는 데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빈발 가능성은 높아져 갈수록 안전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 이상 안전이 추상적 개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별다른 수고와 준비 없이도 위험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위험천만한 환상일 뿐이다. 자칫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은 ‘소비재’다. 한번 만들어 놓고 나면 계속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소비돼 없어질 것이기에 두고두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 다시 만들고 보완해야 하는 소중한 재화다.
상당한 진통이 따르긴 했지만 세월호 관련법과 국민안전처 신설을 포함한 정부조직법이 어느 정도 정리돼가는 것 같다. 이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내년도 정부예산 중 안전과 관련된 부분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예방안전 예산이 제대로 편성돼야 한다. 예산 없는 안전 관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박구병 한국시설안전공단 건설안전본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