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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칼럼] 조합, 순열, 시간으로 본 정책

입력
2014.1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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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다른 길 걸은 중국과 소련

급격한 개방이 소련 몰락시켜

정책변수의 최적의 조합 찾아야

나는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 미국 시골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아내 없이 2개월 지내는 동안 라면 끓이는 방법을 익힌 것이 고작이다. 그 때 요리 비법 세 가지를 습득했다. 첫째는 조합이다. 라면 한 봉지, 계란 한 개, 파 두 뿌리를 준비하면 음식궁합이 이뤄진다. 둘째는 순열이다. 냄비에 물을 끓인 다음 라면과 수프, 계란, 송송 썬 파 순서로 집어넣는 것이 적절하다. 셋째는 시간이다. 라면은 3분, 계란은 30초, 파는 5초 끓이면 된다.

조합, 순열, 시간이라는 세가지 비법은 국가 정책개발에도 적용된다. 1978년 중국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두 가지 정책을 조합했다. 순열에서는 선개혁, 후개방을 선택했다. 시간에서는 개혁은 즉각적으로 실시하고 중단 없이 진행했으며, 개방은 천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진행했다.

1989년 자유를 원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천안문에서 시위를 일으켰을 때 덩은 개혁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전면적 개방을 할 수 없다는 정책을 고수했다. 장쩌민 역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도 외환관리를 비롯, 개방을 보류하는 조치를 취했다.

2013년 등장한 시진핑은 35년 동안 진행된 개혁이 아직 사회문화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가운영 메커니즘과 지도자 철학의 개혁을 시작했다. 지난 5월 25일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들에게 맥킨지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을 비롯한 미국계 컨설팅회사에게서 자문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회사가 미국 정부를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하는 것을 중국 정부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인용 기사를 곁들였다. 시진핑이 사용한 표현은 다르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 제대로 적용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재난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4월 1일) 시진핑이 지시한 미국계 컨설팅 회사로부터의 자문 금지는 개방을 막는 조치가 아니라 개혁을 완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소련은 조합에서는 중국과 같이 개혁과 개방이란 두 가지 정책을 조합했지만, 순열과 시간에서는 중국과 다른 정책을 채택했다. 순열에서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실시하는 반면, 시간에서도 개혁에 충분한 시간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개방의 속도만큼 개혁을 진행하지 못한 소련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소련 당서기 고르바초프는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전격적으로 채택했다. 개혁을 의미하는 페레스트로이카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과 소비자, 돈의 시간적 가치에 대해 전혀 인식을 갖고 있지 않던 소련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시장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역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었다. 개방을 의미하는 글라스노스트는 미소 냉전체제 속에서 소련 자신은 물론, 주변 위성국가에게도 서방과의 교역을 단절시키던 과거 정책을 포기하고 공산권 국가들을 세계시장으로 편입시키는 조치였다.

소련 공산체제는 1989년 11월 일어난 독일 통일의 여파로 무너졌다.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등 개방에 역행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책도 조합, 순열, 시간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책 조합은 산업화와 민주화, 순열은 산업화 다음 민주화, 시간은 산업화가 시작된 1961년과 민주화가 시작된 1987년이다.

산업화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라는 경제적 개혁과 1970년 새마을운동이라는 사회적 개혁을 양 축으로 시작했다. 정치적 개혁을 의미하는 민주화는 1987년 6ㆍ29 선언에서 시작됐다. 정신적 개혁은 아직 부진하다. 외형적인 성과와 달리 우리나라는 법 준수, 윤리, 그리고 신뢰회복이라는 개혁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러시아 사례에서 보듯 개혁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개혁은 중단 없이 진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판교 참사 등 최근 일어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합, 순열, 시간이라는 정책 변수를 통해 개혁을 실현함으로써 국민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자.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ㆍ메커니즘경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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