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 3대1을 2대1 이하로 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정치권을 빅뱅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대형 이슈다. 헌재는 2001년 10월 당시 선거구별 인구편차 4대1로 허용한 선거법 조항을 3대1 이하로 변경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에도 2003년 말까지 선거법 개정 시한을 정했으나 국회는 지키지 않았다. 결국 2004년 17대 총선에 임박해서 선거구를 조정했다. 도시와 지역별, 정당별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얽혀있어 조정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헌재는 선거구 구역표 개정 시한을 내년 12월 31일로 정했다. 선거구 획정은 소선거구와 단순다수제를 골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불과 1년 남짓 남은 기간에 선거구 조정뿐 아니라 그동안 비판이 제기돼 왔던 공직선거법, 정당법 등 선거제도 등에 대한 보완도 뒤따라야 한다.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제라는 당선자 결정방식이 승자독식에 친화적이고 지역주의의 온존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여야의 고착화한 대립과 구조적인 적대적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여야의 대립과 공존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역설이다.
계층, 지역, 세대 요인 등 정당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유난히 세대와 지역으로 확연하게 투표성향이 다른 점은 정당정치를 위협한다. 지역주의와 현역의원의 프리미엄, 중앙당의 하향식 공천제도 등의 조합은 충성의 대상이 지역구민이 아니라 정당지도부로 치환되는 폐쇄적 정당정치로 이어진다. 이는 영남과 호남 등에서 사실상의 일당체제의 온존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시민사회의 균열과 이익집약이라는 정당기능의 상실을 부르고, 정당의 존립 가치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이는 특정지역에서 선거정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정당정치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병폐를 개혁하고, 정당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상타파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입법부가 선거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여야 거대정당으로 대표되는 카르텔 독점구조를 굳이 변경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즉 특정지역에서의 일당우위와 집권당과 거대야당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현행 제도의 혁파에 별 관심이 없다. 제3당의 진입으로 적대적 공존이 흔들리는 법 개정 등에 적극적일 이유는 더욱 없다.
헌재는 인구편차 2대1 이하 변경제시 이유로 ‘투표가치의 평등’을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들었다. 표의 등가성이 심각하게 손상된다면 대의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또 사회적 균열과 갈등이 정당체제 내에서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면 정치는 거리로 나가게 된다. 장외정치는 의회정치의 정지를 의미한다. 타협과 조화의 정치가 작동하려면 정당정치의 핵심적 가치를 막는 장애물들의 제거가 우선돼야 한다. 정당체제가 권력엘리트와 직업정치인의 기득권을 방어하는 기제로 기능하는 시스템의 혁파 없이는 정부형태의 변경도, 투표가치의 평등성 확보도 국민들에게는 공허한 정치적, 법적 유희로 비칠 수밖에 없다.
헌재의 결정에 따른 정치권의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인구 미달의 선거구들의 통ㆍ폐합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덜 대표될 개연성이 높다. 이를 주장하는 농촌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속내와는 무관하게 도시와 농촌의 상대적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을 위한 보정도 필요하다. 또 소선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하는 문제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지역구의 특성을 살려 탄력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에서 백가쟁명처럼 제시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선거구제의 변화 등이 정당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여야의 협상에만 의존해서는 정당체제의 변화는 개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대 총선 때도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결정을 국회는 따르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에는 국회가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뿐이다. 우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결정이 법적기속력을 갖도록 선거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정치는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시민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는 유권자 표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정당체제로의 혁파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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