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국 자본에게 경제 위기는 기회다. 정부가 눈 감아준 치부가 가문에 고스란해지는 건 이럴 때다. 이제 관심사는 세습이다. 창출이 아니다. 새 시장 찾을 동기도 여력도 없다.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가 발간한 무크지 ‘뿌리’의 두 번째 호를 읽었다. (…) 그러다 ‘두 거대 진영에 꽉 끼인 한국’에 대한 분석에서 접한 시각이 독특하고 날카로운 것에 놀랐다. 군더더기를 떼어낸 골자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압력을 조금이라도 모면하기 위한 한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꺼낸 카드가 위안부 문제”라는 것이다. (…) 위안부 갈등이 없었다면 한일 정상이 만나 3각 군사동맹도 꽤 진전을 이뤘을 게 분명하고, 그랬다면 한국의 제1위 무역상대국 중국을 크게 자극할 한미일 동맹강화가 정부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 하지만 위안부 갈등이 한국의 외교술책이란 ‘뿌리’ 의 시각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제도권 밖 노동운동 연구자들이 국제정세까지 공부해 ‘한국의 자본가들’과 ‘지배자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 자본가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란 나름의 결론도 내리고 있다. 그러면 이들의 공격을 받는 소위 한국의 자본가들은 어떠할까? 정치권에 기대는 것 말고 국제정세와 미래이익을 연결 짓는 생각을 하고는 있을까? 한국 자본가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드러난 사실로만 보면 정책이나 규제, 개인 신상에 대해 아쉬운 소리나 하며 돈을 쫓을 뿐이다. (…) 사실 창업 2세들이 대다수인 대기업의 경우 총수들이 나이 70줄에 접어들어, 이제 관심이 각종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상속, 증여 문제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 아마 이런 기업인들에게 다가오는 경제 위기론은 내부문제를 어물쩍 넘길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일지 모른다. 내일(4일)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미국에서는 기업가들이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돈을 쓰는 ‘기업인 정치’가 논란 거리다. 기업가들이 돈으로 직접 자기 정치를 하는 ‘바이 아메리카’는 비난 받아 마땅한 금권정치이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사회에 정치적 목소리를 낼 만큼 신변 정리가 돼 있다는 점에서 보면 경이롭다. (…) 한국 4대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액만 따져도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육박할 만큼 부의 창출이 대기업에 쏠려 있는 게 우리 실정이다. (…)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 연구자들은 한국의 자본가들이 거대 담론을 전개할 수 있다고 과대평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위안부 갈등이 외교술책이라면(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이태규 기획취재부장) ☞ 전문 보기
“삼성전자가 샌드위치 신세다. 한쪽에선 중국 샤오미와 화웨이의 돌풍이 거세다. 이미 세계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은 레드오션이 됐다. 그렇다면 프리미엄폰에서 애플을 꺾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반 토막 났지만 애플은 전년 동기 대비 11% 늘었다. (…) 삼성이 스마트폰을 판다면 애플은 생태계를 판다. 삼성이 물고기를 쫓아다닌다면 애플은 가두리 양식 업체다. 아이폰 고객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고, 뒤집어 말하면 애플 생태계에 한번 포획되면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 애플은 매년 딱 하나의 고가 아이폰으로 브랜드를 관리하며 콘텐트 판매를 통해 큰 재미를 보고 있다. (…) 삼성이 흐름을 뒤집으려면 엄청난 괴물, 이른바 게임 체인저가 절실하다. (…) 갤럭시에 고작 방수나 바이오기능을 입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삼성에겐 고만고만한 기능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그 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은 9월 9일 애플 워치를 선보였다. 시제품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두 번 놀랐다. 우선 애플 워치에 첨단 기술은 거의 안 보였다는 점이다. (…) 정작 전문가들이 가장 놀랐던 건 ‘애플 페이’다. (…) 곧바로 세계 3대 신용카드사, 백화점 그리고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들과 제휴를 맺고 애플 페이가 도입된 지 사흘 만에 100만 건 이상을 뚝딱 처리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막강한 금융ㆍ유통 파워와 결합해 아이폰에 새로운 결제 UX(사용자 환경)를 구현한 덕분이다. 삼성도 뒤늦게 페이팔과 손잡고 반격 채비를 차리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스마트폰 결제 이미지는 이미 애플에 선점당해 버렸다. 삼성전자는 훌륭한(good) 기업이다. 그러나 애플같이 위대한(great) 기업은 아니다. 우선 삼성은 주변환경부터 불리하다. 애플 페이처럼 미국의 표준이 글로벌 표준이 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여기에다 아이폰은 탄탄한 생태계로 차별화에 성공한 반면 갤럭시의 핵심 경쟁력은 엇비슷한 성능을 절반 값에 만들어내는 중국에 덜미를 잡혔다. (…) 하지만 삼성의 문제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건희 회장이 건재했을 때 선제적인 위기의식과 헝그리정신은 삼성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예전 같았으면 갤럭시 기어에 결제기능을 넣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을지 모른다. 한번 최정상에 올랐다는 자신감과 포만감 탓일까, 삼성에는 요즘 그런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
-삼성이 애플을 못 이기는 까닭은(중앙일보 ‘이철호의 시시각각’ㆍ수석논설위원) ☞ 전문 보기
한국 경제ㆍ기업을 세우고 넘어뜨린 건 시장ㆍ경영보단 정책ㆍ정치였다. 어쨌든 나라는 성장했지만 자ㆍ타력 중일 압박에 요즘 샌드위치 꼴이다. 보혁 해법은 각각 관성과 혁신이다.
“현대중공업과 한겨레신문이 가을마다 여는 축구 동아리 친선대회가 벌써 17년째가 됐다. (…) 사실 올해는 현대중공업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대회를 못할 줄 알았다. 지난주 현대중공업은 3분기에 1조9346억원의 적자(영업손실)를 냈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누적 적자액이 3조원을 넘어섰다. (…) 축구로 만난 현대중공업은 어려움과 거리가 먼 회사 같았다. 첫 시합이 열린 1998년에 7조원 선이던 매출은 25조원대로 늘었고, 2004년을 빼고는 해마다 수천억원에서 최대 3조6000억원(2010년)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 이런 회사가 조 단위의 적자를 내는 상황은 분명 새로운 것이다. 세계경제의 불황과 중국 조선사의 추격이 원인이다. (…) 한국 경제가 위기인 것은 내수부진, 격차확대에 더해 그나마 선전하던 수출제조업의 경쟁력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순환적 불황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중국의 추적과 엔화 약세라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는 데 심각성이 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과 내수를 기반으로 선발주자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이제 조선, 철강, 가전, 정유, 석유화학, 섬유 등에서 우리 턱밑까지 쫓아와 ‘차이나 리스크’를 안기고 있다. 엔 약세는 중국 견제란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도 닿아 있어 쉽게 역전될 것 같지 않다. 이제 우리 경제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한 지점에 왔다. (…) 이제 개방형 혁신, 기초 및 응용 연구 확대, 서비스업 육성, 내수 확대 등 많은 것을 탁자에 올려놓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열쇳말을 찾을 때다. 어쩌면 그 정도로는 어림없을 수도 있다. 교육, 노동, 정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위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 국민들 사이에 유리와 불리가 엇갈리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나오는데, 기왕 하려면 이런 시대적 필요성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 다시 갈림길에(한겨레 ‘편집국에서’ㆍ이봉현 미디어전략 부국장) ☞ 전문 보기
“연말로 향해 가는 요즘, 기자가 만난 한국의 재계 인사들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년도 경영 계획을 짜면서 “경기가 다시 살아날 것을 기대한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비관론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업종을 불문하고 동시다발적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철강ㆍ석유화학ㆍ조선 등 ‘주식회사 한국’을 먹여 살려왔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업종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자와 자동차 등 그동안 잘나갔던 분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 기업인이 미래를 비관하는 또 하나 이유는 이런 고민을 기업인만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산업 경쟁력이 좋아지려면 당사자인 기업인만 가지고는 힘들다. 정치권에서 경제 문제를 화두로 치고 나가야 한다. 일본은 정부가 엔저(円低)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를 내놓았고, ‘당(黨)이 곧 국가’인 중국은 산업 고도화와 신성장 동력 육성 등 굵직굵직한 경제 변화를 정치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국가들의 변화는 기업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출발했다. (…) 요즘 정치권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개헌론에서조차 경제란 변수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세계시장에서 중국 기업에 치이고, 엔저를 뒤에 업은 일본 기업에 밀려나는 현실은 기업인들이 모이는 저녁 자리에서나 한숨처럼 터져 나온다.”
-경제위기 외면하는 政治圈(조선일보 ‘데스크에서’ㆍ호경업 산업1부 차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