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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에너지정책 '환경 딜레마'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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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에너지정책 '환경 딜레마'에 빠지다

입력
2014.11.0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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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대통령 오명… 주요 지지층 환경단체 등 돌려

외교전략에 에너지 카드… 유럽동맹국 러 가스 의존 탈피 절실

加 타르샌드 원유 수입할 송유관 환경단체 "더러운 석유" 건설 반대, 40년 만의 원유 수출 재개에도 촉각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주 린우드의 한 주유소에 세차 시 휘발유가격이 갤런당 2.99달러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4년 만에 최저인 미국 유가는 내년에는 더 떨어질 전망이다. 린우드=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주 린우드의 한 주유소에 세차 시 휘발유가격이 갤런당 2.99달러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4년 만에 최저인 미국 유가는 내년에는 더 떨어질 전망이다. 린우드=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피해 2주년을 추모하며 “기후변화와의 싸움을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 리트윗을 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소식을 받는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변화 및 친환경 발언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의 반응은 임기 초기와 다르다. ‘석유대통령’ ‘위선자’ 등 악플들이 대통령의 SNS에 줄이어 달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환경단체들도 등을 돌렸다. 백악관이 대외적으로 친환경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화석연료 개발을 기반으로 한 경제 회복을 포용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정부의 환경ㆍ에너지 정책은 오바마 대통령의 환경 정체성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6월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 액션플랜’을 발표하며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석유ㆍ천연가스 개발 사업과 관련해 지난 10년 간 가장 많은 30건의 연방정부 토지 분양을 승인했다. 지난해 미국 석유 소비량은 40만배럴 증가하는 등 ‘석유중독’ 우려가 재점화됐다.

미국 에너지기업 체사피크의 직원들이 텍사스주에서 포트워스 분지에서 셰일가스를 시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텍사스를 비롯해 오클라호마, 펜실베이니아 등지에서 대규모로 셰일가스가 채굴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에너지기업 체사피크의 직원들이 텍사스주에서 포트워스 분지에서 셰일가스를 시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텍사스를 비롯해 오클라호마, 펜실베이니아 등지에서 대규모로 셰일가스가 채굴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석유산업, 미국 경제성장 근간

오바마 정부의 상충된 행보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지난 6월 미 환경보호청(EPA)은 2030년까지 화석연료 발전 분야 탄소배출을 2005년 대비 30% 절감하는 ‘청정발전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후 미국 해양에너지관리국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외변대륙붕(Outer Continental Shelf) 석유ㆍ천연가스 시추 개발 계획을 관보에 올렸다. 미국 해양 대륙붕의 원유 매장량은 900억배럴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발하면 EPA가 발표한 탄소배출 절감량과 맞먹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친환경 성향 정보기술(IT)기업과 환경단체를 주요 지지층으로 둔 오바마 대통령이 석유계 에너지 개발을 부추기는 데는 경제ㆍ전략적 이유가 있다.

미국 경제는 올해 2, 3분기 각각 4.6%, 3.5%의 성장을 기록하며 2003년 이후 최고 성장을 기록했다.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들이 고전하고 있어 미국의 선전은 더욱 돋보인다. 특히 셰일층 개발을 통한 에너지 혁명은 수출 확대와 고용 창출 등 경제 회복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방대한 셰일 매장량과 수압파쇄 및 수평시추 기술 발전을 통해 미국은 곧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셰일 혁명의 경제적 효과는 상당하다. 셰일 시추가 활발한 노스다코타와 텍사스주는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9.7%, 3.7%를 기록했다. 특히 노스다코타주는 10년 전 대비 일자리가 400% 증가했다. 셰일 혁명은 무역수지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석유학회(API)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의 원유 및 연료 수입량은 전년 대비 12% 하락하며 최근 19년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유 생산 증가로 인한 휘발유 가격 하락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달러를 기록하며 4년 만에 3달러 선 붕괴를 앞두고 있다. 휘발유 가격 하락으로 미국의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4.5포인트로 7년 만에 최고치다.

● 에너지안보ㆍ외교 전략 중대 변수

미국의 에너지안보와 외교 전략에도 석유계 에너지 개발은 중요하다. 미국의 원유 생산이 연이어 기록을 경신하며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 생산량은 아직 미국 내 수요의 약 50%를 충당하는데 그치고 있다. 석유 에너지 생산을 촉진해 에너지 독립을 한다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천연가스를 비롯해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되면 유럽 동맹국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세계 에너지 패권 다툼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에너지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대해 부시 정부의 중동지역에 대한 과도한 군사ㆍ외교적 개입에서 벗어나 아시아 지역을 외교활동의 핵심 지역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에너지 개발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일본 등 아시아지역의 주요 에너지 수입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발전에 큰 타격을 입은 일본은 미국, 러시아 등 천연가스 수입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일본과 같은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 국가들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출하려면 장기간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일본으로 천연가스 수출을 증대할 수 있는 기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및 유럽의 경제 제재에 부딪쳐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에너지는 아시아지역 내 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인 것이다.

● 친환경 잣대, 키스톤XL 승인과 원유 수출 재개

오바마 대통령에게 석유 에너지는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지층을 고려했을 때 환경 및 기후변화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어젠다다. 임기를 2년 남짓 남겨둔 오바마는 다음 세대가 자신의 정권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지금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내년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총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획하고 있을 오바마의 친환경 성향을 시험할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이 있다.

첫 번째 시험대는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1,897㎞ 길이의 키스톤XL 송유관 건설 승인 여부. 키스톤XL은 2008년 캐나다 트랜스캐나다사가 국무부에 승인을 요청한 사업으로 캐나다 알버타주의 타르샌드에서 추출한 원유를 미국 중서부 등지로 운송하기 위한 송유관 사업이다. 지지자들은 키스톤XL이 베네수엘라와 중동지역 에너지 의존도를 40%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1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압박으로 키스톤XL을 60일 안에 승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환경단체들이 강력 반발하자 2012년 1월 키스톤XL의 승인 요청을 공식적으로 무효화했다. 환경단체들은 ‘더러운 석유’라고 불리는 타르샌드의 수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트랜스캐나다가 승인을 재요청하면서 집권 2기에 들어서도 키스톤XL은 오바마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의 주요 잣대로 남아 있다. 국무부에서 두 차례 환경평가를 통해 송유관 건설이 기후변화에 큰 영향이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결정을 미루고 있다.

또 다른 시험대는 원유 수출 재개다. 미국은 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를 계기로 1975년부터 원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원유 생산이 급증하면서 수출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부 장관 역시 원유 수출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고, 상무부는 지난 6월 셰일가스를 통해 추출되는 초경질원유를 정제유로 재분류해 수출을 허용했다. 수출 증대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오바마 정부가 원유 수출을 재개한다면 40년 만에 원유 수출을 재개한 ‘석유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 국내 철강산업ㆍ석유수입 다변화 영향

미국의 키스톤XL 송유관과 원유 수출 재개는 한국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2011년 코넬대 글로벌노동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에 사용되는 코일철강 중 상당량이 한국과 인도에서 수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미국의 철강 보호무역주의로 수출에 타격을 보고 있는 한국의 철강 수출에 좋은 기회가 된다.

미국의 원유 수출 재개 역시 중요하다. 지난 6월 미국이 수출을 허용한 초경질원유의 첫 도착지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8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원유가 국제시장에 풀린다면 수입원을 다각화해 중동지역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다. 경제가 더할 수 없이 밀어주는 데도 불구하고 낮은 지지율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면한 에너지와 환경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김종춘 코트라 워싱턴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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