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정한 성적이 합격 가능하거나 등급 상승으로 최저학력 충족 경우
추가 합격해 내년 신입생으로 입학
논술 답안지·전형 관련자료 등 남아 있어야 피해 여부 판정 가능
오류가 없다던 교육당국은 결국 1년 만에 꼬리를 내렸다. 뒤늦게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나섰지만 피해 규모와 구제 범위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사상 초유의 대학입시 결과 번복 사태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31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류를 뒤늦게 인정하면서 ‘피해 학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이냐’의 문제가 떠올랐다. 교육당국은 이날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세계지리 8번 문항을 모두 정답처리하고 점수를 재산정해, 늦어도 올해 정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12월19일 이전에 피해 학생의 추가 합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입시에서 지원 대학에 불합격한 학생 중 재산정된 성적을 적용할 경우 합격 가능한 학생은 추가 합격 대상이 된다. 수시모집의 경우 당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나 세계지리 등급 상승으로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하는 학생은 구제된다. 정시 모집의 경우엔 세계지리 등급이나 표준점수 또는 백분위가 상승해 합격 점수를 넘는 학생이 해당된다. 재산정으로 세계지리 등급이 오르는 학생은 4,800여명으로 추산된다.
추가 합격이 결정된 학생들은 내년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지원했던 대학에 떨어진 뒤 다른 대학에 입학해 이미 1년을 이수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편입학 허용 여부를 해당 대학과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피해 여부를 확정하기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수시 논술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달인 수험생은 대학측이 아예 논술 채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등
급 상승으로 논술 채점을 다시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피해 학생 구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인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논술답안지 등이 제대로 보관되지 않았다면 피해 여부를 판정할 수 없게 된다”며 “그 외 여러 전형 관련 자료가 제대로 보관되지 않아 피해 여부가 불확실해질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지리 8번 문항이 당락을 좌우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곳은 대학뿐이란 점도 짚어야 할 대목이다. 대학측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수험생의 학교생활기록부, 논술, 면접 등의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계지리 등급이나 점수에 따른 당락 여부에 대해 학생들이 100%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성적이 재산출된 뒤에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학생들이 구체적인 점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하향 지원한 학생들의 경우,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워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김성훈 평가원장은 “그런 학생들에 대한 대책은 구체적으로 준비돼 있지 못하며 아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사실상 구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구제 절차에서도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추가합격자에 대한 전형을 진행할지, 대학이 전형을 진행한 후 학생에게 결과를 통보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작년 8개 대학에 지원한 학생의 경우 합격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대학을 선택하라고 할 것인지, 8개 대학 모두 이 학생의 전형을 진행한 뒤 합격 기준을 충족할 경우 통보해야 하는 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오류를 인정했으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마음고생도 없었을 텐데, 이런 혼란을 야기시키고도 책임자 문책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