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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해직 언론인이 돌아와야 하는 이유

입력
2014.10.3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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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고 성유보 선생은 ‘천생 기자’였다.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그는 74년 동료 기자들과 함께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유신독재의 폭압에 맞서 싸우다 이듬해 봄 거리로 내쫓겼다. 88년 창간한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과 논설위원 시절을 합해도 그가 직접 취재하고 기사 쓰고 신문 만든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40년을 한결같이 ‘언론 현장’을 지켰고 펜이 아니면 온 몸으로 그 현장을 기록했다. “언론의 기본은 진실입니다, 진실. 그에 바탕하지 않은 언론은 언론도 아니고 거짓말쟁이, 쓰레기입니다.”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 ‘40년’에 담긴 고인의 마지막 인터뷰는 그가 이 시대 언론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되고 말았다.

90년대 초 신문사에 입사한 내게 ‘해직 기자’는 고인처럼 태산 같은 어른들에게나 붙는 이름이었다. 모진 고초를 겪고도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한 분들, 언론이 흔들릴 때마다 매섭게 꾸짖던 분들을 깊이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론 몹시 버거워했다. 세상이 그 시절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입속말로 항변하기도 했다. 언론과 언론인의 잿빛 미래를 한탄하면서도 스스로 사표를 던질지언정 노트북과 마이크를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 나뿐일까.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대선캠프와 그 주변을 떠돌던 ‘MB맨’들이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면서 그런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뉴스채널 YTN이 2008년 10월 비극의 첫 화살을 쐈다.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 전 사장은 자신의 취임에 반대한 노종면 당시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했다. 1심 전원 승소, 2심 3명 패소를 거쳐 대법원으로 넘어간 해고무효소송은 3년 넘게 뚜렷한 이유 없이 선고가 미뤄졌고, 이들은 지난달 6일 해고 6년을 맞았다. MB와의 친분으로 자리를 꿰찬 김재철 전 MBC사장은 2010, 2012년 두 차례 파업을 빌미로 기자, PD 등 9명을 해고했다(이후 2명 복직). 당시 노조 간부도 아니었던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는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배후로 지목돼 쫓겨났다. 김 전 사장 역시 해임됐지만 여전히 그 시절 사람들이 요직을 장악한 MBC는 ‘해고 무효’ 판결마저 거스르며 편법으로 버티고 있다.

요즘 두 방송사의 현실을 보면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고 공정방송 회복을 주장했을 뿐인 이들을 기어이 쫓아낸 이유가 분명해진다. 한때 ‘한국의 CNN’를 표방했던 YTN은 ‘증오ㆍ황색 저널리즘’에 빠진 일부 종편들과 경쟁하기 바쁘다. MBC는 베테랑 기자와 PD들을 한직으로 내몰고 경력기자 등 외부 수혈로 조직의 DNA 자체를 바꾸는 데 여념이 없다. 대선 후보 시절 흐릿하게나마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던 박근혜 정부가 “개별 회사의 노사관계일 뿐”이라며 해직 언론인 문제를 끝내 외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해직자들은 1세대 해직 언론인들이 그랬듯이 ‘언론 현장’을 지키며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YTN 노종면 기자는 뉴스타파의 초대 앵커를 거쳐 지금은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에서 ‘뉴스K’를 진행하고, 정유신ㆍ권석재 기자는 뉴스타파 기자로 뛰고 있다. MBC 최승호 PD는 뉴스타파를 진행하며 취재에도 뛰어들어 ‘간첩조작 사건’ 특종보도로 최근 통일언론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꼭 제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해고 이후 소일로 목공 일을 시작했다가 고급 수제(手製) 스피커를 제작하고 내친 김에 회사까지 차린 박성제 기자도 그간의 사연을 엮은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에서 반드시 돌아가 “MBC를 ‘만나면 좋은 친구’로 되돌려 놓는 꿈에 도전하려 한다”고 썼다.

기자(언론인)는 투사가 아니다. 그러나 싸워야 기자다. 회사에서 월급 받고 사는 샐러리맨이되 공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기자의 숙명이다. 싸움의 대상은 권력일 수도, 자본일 수도, 사익(社益)만 앞세우는 경영진일 수도, 진실을 가리는 거짓된 세상일 수도 있다. 나아가 안주의 유혹에 휘둘리는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그들,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그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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