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 주말 즐기러온 외지인 보며 인터넷 뒤지며 지름신과 싸우고
새벽출정 즐기던 내 옛모습 떠올라
나락 베기 끝난 논 바라보며...한여름 잡초와 혈투 벌이던 전쟁터가 정리되는 느낌, 시원 허무하달까
자네처럼 친환경하는 사람도 있어야지 하는 말에 으쓱도 잠시
잡초로 콤바인 작업 안된다는 말에 부리나케 달려가 낫질이라니
"약 쓰고 비료 뿌리고 남들처럼 혀" 작년 3분의2 소출에 안쓰런 시선들
"다른 농사 잘됐잖아" 아내까지 위로...초보 농군에 대한 地神의 경고일까
안개가 며칠째 아침 구례를 채우고 있다. 거둬들여 말리고 때려서 추려야 할게 잔뜩인데 아침마다 들판은 여자들이 부러워 할 만큼 촉촉하다. 오토바이도 그랬다. 미처 닦아내지 못하고 앉은 오토바이 의자에서 온몸으로 소름이 번졌다.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들썩해 봤지만 늦었다. 헬멧에도 뿌옇게 물기가 내려앉아 안면 마스크를 내리지도 못하고 실눈을 뜬 채 서둘러 나섰다. 온갖 잡새들이 농장에 베어 놓은 들깨더미 위에 앉아 조찬을 즐기고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길을 나서니 못 보던 차들이 늘었다. 맞다. 단풍철에 주말이구나. 집을 통째로 끌고 다니는 차도 보이고, 지붕에 몸채만한 짐칸을 따로 얹은 차들도 보였다. 애쓴다 싶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저러고 다니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며 지름신과 싸웠다. 꽃철이나 단풍철이면 밤새 배낭 꾸리면서 기꺼이 새벽 출정을 즐겼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나는 그 때만 해도 눈에 없던 현지인이 됐고, 이제 그들은 내게 성가신 외지인이었다. 내 마음이 급했지, 급할 게 없는 그들은 거북이 놀이를 하면서 차선을 막기 일쑤였다. 치미는 욕을 누르며 단전에 힘을 모았다. ‘참자. 오늘은 중요한 날, 경건한 마음가짐을 유지하자. 창고에 나락 쌓는 좋은 날이니...’
농장에 도착하니 간전댁할머니가 와 계셨다. 예전엔 “농장 안 델꼬 가면 걸어서라도 갈라요” 하시더니, 이젠 협박 절차도 없이 그냥 오시기로 한 건가. “할머니! 말씀도 없이 언제 오셨대요!” 멀리서 걸어가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할머니는 특유의 미소만 지으신다.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뻔히 안 들릴 줄 알면서 ‘나 핑계 대는 중이야’ 하시는 듯 하다.
가까이 다가가 다시 여쭈니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잠이 와야 말이지. 선재네 오늘 나락도 담아야 하는데 들깨 두드릴 새가 어디 있으까 싶어 밝아진 담에 슬슬 걸어왔어요.” 예상했던 이유를 둘러대며 반나절거리 일을 마무리 하고 계셨다. “나락은 오후에 담을 건데 뭘 걱정하셨대요. 얼른 모셔다 드릴게 장갑 벗고 내려가시게요.” 깻단 묶으시던 끈을 당겨 뺏으며 팔순 노인네와 힘겨루기를 했다. 펼쳐놨던 천막을 접으며 “나락이 션찮은데 작년만큼 나올라나 모르겠어요” 했더니 할머니가 정색을 하신다. “작물들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랍디다. 나(작물)한테 언제 밥 줬냐고 그런대요.” 혼내시는 듯 했다. ‘나락은 저쪽에 널어놔서 안 들릴 텐데...’ 했지만 결과에 욕심내지 말라는 말씀일거다. 하늘이 하는 일 일뿐.
엊그제 나락 베던 날, 오후에 하자던 콤바인(벼를 베서 낟알을 터는 일까지 한 번에 해주는 기계) 작업을 조금 일찍 시작하겠다고 S형님이 전화했다. 작업 예정 시간까지 두어 시간 남아서 여유부리고 있다가 갑자기 전화를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형님, 안 돼요. 아직 덕석(멍석)도 안 깔아 놨는데요.” 나락을 말릴 곳에 그물처럼 생긴 긴 천막을 깔아놓아야 하는데 아직 차에 실려 있었다. 몇 차례 저항해 봤지만 형님은 그냥 하자고 밀어 부쳤다. “큰 논 먼저 작업헐테니께 덕석 깔고 있어. 애기 엄마가 나락 싣고 자네 있는 데로 가면 같이 부어버리면 되야. 지금 못허면 사흘은 밀려야 허니께.” 약간 꼬이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나쁜 생각 않기로 했지 않은가. 순순히 말을 들었다.
부리나케 덕석을 깔았다. 작년 겨울, 쥐가 뚫어버린 덕석 빼고 세 개 밖에 없어서 장씨 아저씨한테 두 개를 더 빌려 아스팔트 농로가에 자리를 마련했다. 아내를 부를 새도 없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깔개의 선을 맞추고 각을 잡으니 장화 바닥이 뜨뜻해진다. 맥주랑 마른안주 몇 가지 사서 큰 논으로 달려갔다. 가운데 큰 코딱지만큼 빼고 논은 거의 다 바닥을 드러냈다. 한 여름 잡초와 혈투를 벌이던 전쟁터가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트럭 그늘 바닥에 앉아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S형님은 재작년부터 시작된 질문을 또 했다. “암것두 안 했는가?” 농약을 안 쳤냐는 뜻이다. “예. 영양제랑 해충기피제 같은 건 만들어서 쳤죠.” 대답했더니 옆에서 땅콩만 드시던 형수님이 대화에 들어섰다. “약값(농약) 안 들고 좋겄네요.” 형님은 정색을 하며 말을 가로챘다. “약값 안 든다고 좋기만 하겄는가. 풀 땜시 고생허는 생각은 안 허고? 아직도 풀이 솔찬히 많이 있구마. 저거 내년에도 또 날 거인디 그러지 말고 약 혀. 쩌그 윗마을 김씨도 여름에 풀약(제초제) 치는거 봤는디 이 참에 친환경 검사했어도 통과했드구마.” 형수님도 하실 말씀이 있었다. “약값 덜 들고 쌀 비싸게 팔면 괜찮은 거 아닌감? 그리고 김씨네는 약 친 나락 검사한 게 아니라 그 옆 다랑지에서 검사했다는데 뭘.” 주제가 옮겨 가고 목소리는 높아졌다. “그 옆 다랑지에도 약 치는 거 봤다니께! 알지도 못하면서 딴 소리여.” “옆 논은 약 안 쳤대요! 약을 친 논에서 검사하면 워쩌케 친환경 검사를 통과헌데요.” 형수님이 눈을 흘겼지만 형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치는 거 봤다니께! 본 사람이 알지 안 본 사람이 알겠는가!” “그 양반이 안 쳤다니께 허는 말 아니래요! 검사해도 약 안 나오면 그 비싼 검사를 왜 하고 돌아 댕긴대요! 우리 논도 확 쳐부러야 되겄네.”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 허네. 얼릉 나락이나 부리고 와!”
여기 저기 ‘친환경’ 글씨를 새긴 깃발과 간판은 많지만 실제도 환경이랑 친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랑 지자체가 몰아가고 이런 저런 보조금도 준다고 하니 너도 나도 신청해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키는 대로 하면 생산량은 줄어들고, 정부가 조금 비싸게 수매한다고 해도 차액이 보전되지 않았다. 친환경농사 짓는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손해 보면서 농사지을 만큼 여유가 있겠는가. 잔류 농약 검사 인력도 모자라서 돌아가며 하다 보면 20년에 한 번 검사하게 된다는 말도 있으니, ‘그냥 농약 칠만큼 치다가 걸리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쨌든 “자넨 힘들어도 함 친환경으로 계속 해보소. 제대로 허는 사람도 있어야 헝께.” 형님 말씀에 어깨가 으쓱거리고 턱이 앞으로 쭉 나왔다.
덕설 깔아 놓은 데로 와서 나락을 쏟아내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작은 논 마저 베러 간 S형님이었다. “나락을 벨 수가 없잖여! 풀은 많고 키가 작으니께 제대로 안 잘린다 말이시! 자네가 낫으로 베던지 알아서 혀” 잽싸게 튀어갔다. 작은 논에는 '방동사니'라는 풀이 그물처럼 번졌었다. 뽑고 자르고 한다고 해봤지만 벼를 휘감고 도는 놈들을 다 해결하지 못했던 터였다. 콤바인으로 잘라지지 않은 벼를 낫으로 베어 모았다. 콤바인 옆에서 낫질,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이란게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이틀간 당그레질하며 말린 나락을 담기 시작했다. 농사일이 다 힘들지만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가 말린 나락 포대에 담아 창고에 넣는 일이다. 건조기에 말려 담으면 좋겠지만 돈도 돈이고, 쌀 맛이 없다고 했다. 양보다 질에 목숨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몸 고달픈 건 당연하다. 신식 기계보다는 어르신들의 몸 쓰는 방법이 더 좋기도 하다.
세 포대쯤 담는데 느낌이 안 좋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작년만큼은 안 될 성 싶었다. ‘미리 계산하지 말자’ 생각하며 이장님댁 막내랑 담고 있는데 뒷목이 따끔하더니 꿀벌 한 마리가 눈앞으로 지나갔다. “아 이 확! 재수없이...” 뒤통수 때리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그 때 J형님이 내려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락 담을 때 전화 허랑께! 내 이럴 줄 알고 걍 와 봤네.” 공사 현장에서 석축 작업하다가 팔꿈치를 다쳐서 한의원에 침 맞으러 다니면서도 도와주겠다고 팔을 걷는다. 잠시 후 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 사장까지 수를 늘리며 거든다. “형님, 나 이런 일 하는 거 좋아해요. 나도 촌놈인디요.” 하루 쉬는 날인데 돕고 싶다고 나왔다. 고마워서 벌에 쏘인 것도 까먹었다.
기운도 나고 기분도 업되니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헌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제대로 된 나락이 거의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심했다. “나락 어디다 숨겨놨냐?” 포대 옮겨주겠다고 나타난 이장 친구가 트럭에서 내리면서 의아해 했다. 애써 웃는 척 했지만 허탈했다. “유헌아, 올해 나락 다 잘 됐다고 허는디 넌 왜 그냐?” J형님이 안타까운지 말을 이었다. “긍게 친환경 허지마. 약도 치고 비료도 뿌리고, 넘들처럼 허믄 되는디 멋 헌다고 애써 풀 잡고 근다냐. 올해 나락 안 된 놈은 농사 그만 지어야 헌다고 그러더라.”
창고에 넣고 보니 나락 포대가 소박하다. 작년 소출의 3분의 2였다. 박사장이 전화를 했는지 제수씨까지 집으로 와 이리 저리 뛰어다니느라 기운 빠진 아내를 도와가며 맛 집 솜씨로 식탁을 차렸다. “모자란대로 회원들 먼저 보내고 우린 사 먹지 뭐.” 어색하게 웃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술잔을 같이 비워줬다. 오랜만에 생선회 맛도 보고, 매운탕 국물도 잘 넘어갔다. “다른 농사 잘 됐으니 안 되는 것두 있겠지 뭐.” 아내도 속이 쓰린지 혼잣말처럼 나를 위로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가 생각났다. ‘애써 기운내지 않아도 괜찮아. 힘들 땐 힘들어 하면 되는 거야.’ 위로가 되는 말이다. 서운한 마음도 가라앉는다. 아마도 농사 좀 알게 됐다고 떠드는 건방을 막아주려 지신(地神)께서 경고하신 듯 하다.
다시 기분을 추스리고 한 잔 하는데 목에 까실까실한 게 걸린다. 조금 전 매운탕 건더기를 홧김에 삼킨 게 걸렸나 보다. “칵, 카악” 아무리 해도 튀어나오질 않는다. “핀셋 가져와 볼까? 아니면 화장실 가서 어떻게 해봐.” 아내 말에 일어서다 의자 다리에 복숭아 뼈를 냅다 부딪쳤다.
“아 참. 오늘은 머 이리 되는 게 없냐. 카~아악!”
前 한국일보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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