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30년 지나도 한결같은 엄마 마음... 세월호는 7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0년 지나도 한결같은 엄마 마음... 세월호는 7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입력
2014.10.31 17:12
0 0

빌헬름 그림 글, 모리스 센닥 그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시냇물과 꽃과 새들은 그렇게 곧잘 만날 수 있단다... 사람들은 그럴 수 없어. 사람들은 날지도, 헤엄치지도 못하고 말이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다른 마음으로 갈 수 있고, 마음 사이에 놓여 있는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단다. 내 마음이 너에게 가는 것처럼 말이야.”

새들은 멀리 있는 새를 만날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라는 다리를 통한다면 멀리서도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사랑하는 밀리’는 그림 형제 중 동생인 빌헬름 그림이 밀리라는 소녀에게 보내는 저 편지로 시작해 밀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옛날에 한 과부와 어린 딸이 살았다. 엄마는 수호천사가 늘 아이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소녀의 주위를 늘 맴도는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전쟁이 나고 엄마는 딸을 숲 속으로 피신시키며 사흘만 있다 돌아오라고 한다. 홀로 숲 속으로 간 소녀가 두려움 속에서 별을 보고 기도하자 별 하나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곳엔 오두막이 있었고 한 노인이 소녀를 맞아준다. 소녀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외모로 성장한 수호천사를 대면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흘이 지나 엄마에게 돌아가려 하자 노인은 장미꽃 봉우리를 주며 꽃이 활짝 피면 다시 만날 거라고 한다. 마을로 돌아온 소녀는 자신의 집 앞에 앉아있는 웬 늙은 할머니를 발견한다. “오, 내 사랑스런 아이야, 신께서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셨구나. 죽기 전에 너를 다시 한 번 보게 되다니!” 늙어버린 엄마는 소녀가 숲으로 떠난 지 서른 해가 지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정하게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이웃들은 죽은 두 사람과 활짝 핀 성 요셉의 장미를 발견한다.

묘비들 앞에서 소녀와 수호천사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뒤에 있는 묘비에는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새겨져 있다. 왼편의 전경에서는 성 요셉이 장미꽃 줄기에 손을 대고 있고 어린이 악단의 모습도 보인다. 어린이 중 맨 뒤의 소녀는 안네 프랑크와 흡사하다.
묘비들 앞에서 소녀와 수호천사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뒤에 있는 묘비에는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이 새겨져 있다. 왼편의 전경에서는 성 요셉이 장미꽃 줄기에 손을 대고 있고 어린이 악단의 모습도 보인다. 어린이 중 맨 뒤의 소녀는 안네 프랑크와 흡사하다.

소녀는 숲 속에서 이미 죽었다. 별을 보고 “천국의 문에 박힌 못들이 반짝이는구나! 하느님이 문을 한번 열어주시면 얼마나 기쁠까”라고 하는 장면이 소녀의 죽음과 구원을 암시한다. 소녀가 숲 속에서 보낸 사흘이 현실 세계에서는 30년이었다는 대목에선 동서양의 전설과 민담으로 익숙한 ‘별천지’ 모티프가 쓰였다. 빌헬름 그림은 별천지에서 구원받는 아이의 이야기로 종교적 교훈을 주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텍스트가 쓰인 지 거의 170년 만에 그림을 그려 넣어 그림책을 완성한 모리스 센닥은 이 고전적인 이야기를 동시대적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사랑하는 밀리’의 그림은 얼핏 보면 바로크, 낭만주의가 섞인 고전적 양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리 매끈하지만은 않다. 여러 장면에서 텍스트에선 설명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요소가 발견된다. 숲 속 원경에는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 망루와 안네 프랑크와 다윗의 별 등이 보인다.

숲 속으로 피신 온 소녀 뒤의 원경엔 남루한 아이들의 행렬이 보이고 그 뒤엔 흐릿하게 망루가 보이는데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와 아주 닮았다.
숲 속으로 피신 온 소녀 뒤의 원경엔 남루한 아이들의 행렬이 보이고 그 뒤엔 흐릿하게 망루가 보이는데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와 아주 닮았다.
아우슈비츠 제 2수용소 정문
아우슈비츠 제 2수용소 정문

유대인인 모리스 센닥은 이 텍스트를 ‘세상의 폭력에 죄 없이 희생되는 아이와 그를 구하려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읽었다. 희생되는 아이와 애끊는 어머니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세월호 참사 등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독일의 그림책 연구가인 오틸리에 딩에스는 ‘사랑하는 밀리’를 어린이 성담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용이 결합한 ‘영웅적인 아이들에 대한 찬가’로 분석한다.

소녀는 행복했던 오두막을 뒤로 하고 고생 끝에 숲을 벗어나 엄마에게 돌아온다. 죽어서도 엄마와 한 약속을 지켰다. 엄마는 딸이 오래 전에 야수에게 잡아 먹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기를 갈망했다.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천국에 있는 딸을, 헤어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불러낸 것 아닐까. 30년이 지나도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하물며, 세월호가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지는 7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