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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이슬람 '부르카'와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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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이슬람 '부르카'와 전쟁 중?

입력
2014.10.3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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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안전 위협하고 여성 억압" 佛 '부르카 금지법' 제정 논란

유럽인권재판소 "적법" 결론…

쓰는 것도 벗는 것도 그녀들의 몫

베일 금지는 또 다른 폭력이자 서구 중심적 시각이란 의견도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 한창이던 지난달 3일. 무슬림으로 보이는 한 여성 관객이 동행한 남성과 함께 극장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경비원이 해당 여성 관객에게 다가가 “얼굴 가리개를 벗든지 극장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한 탓이다. 장-필리프 틸레이 오페라단장은 “일부 출연진이 (베일을 쓴 여성 때문에) 노래하기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해당 여성은 눈을 제외하고 베일로 머리와 얼굴을 모두 가린 상태였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프랑스에선 2011년 ‘부르카 금지법’이 제정됐다. 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선 부르카나 니캅 착용이 금지된다. 위반하면 최대 150유로(한화 22만원)의 벌금을 물거나 시민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프랑스 경찰은 법이 시행된 1년 동안 354명을 적발, 299명에게 벌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유럽인권재판소는 올해 7월 프랑스의 부르카 금지법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소는 “부르카 금지법이 유럽인권보호조약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얼굴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프랑스 정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에 떨고 있는 국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르카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호주에선 지난달 27일 ‘얼굴 없는 사람들’(faceless)이라는 단체가 호주 전역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며 KKK 복면, 오토바이 헬멧, 니캅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도인 캔버라 연방의회 진입을 시도하다 제지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BBC 등 외신이 보도했다. 호주는 최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보복 테러 대상국으로 지명한 국가이기도 하다.

단체 회원 세르조 레데갈리는 “만약 당신이 무슬림 여성이라면 얼굴 전체를 가리고도 의회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그룹은 의회 진입이 안 된다”며 “이런 규정이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부 보수파 의원들이 부르카 차림의 무슬림 여성이 의회 방청석에 앉을 때 별도의 유리 칸막이로 둘러싸인 좌석에 앉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토니 애벗 총리의 반대로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부르카가 공공안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종종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을 자살폭탄 요원으로 이용한다. 이런 자살폭탄 테러는 여성의 몸을 수색하기를 꺼리는 문화와 맞물려 주로 이슬람권에서 발생했지만 9?11테러 이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자국에서도 이런 테러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이 커졌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라 걱정이 더 많다. 500~600만명의 거주자 중 2,000명의 여성들이 베일을 쓴다.

하지만 무슬림은 물론이고 인권단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부르카 금지법은 근거 없는 이슬람 혐오증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팀 사우트포마세인 호주인종차별위원장은 “누구도 2등 시민처럼 취급 받아서는 안 되며 연방의회 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면서 “지금까지 어떠한 전문가에게서도 부르카가 특별한 안보 위협이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성 억압의 상징인 부르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일부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의 베일 착용을 강제하고 어기면 처벌하고 있다. 이란, 탈레반 등이 대표적이다.

아니 수지에르 국제여성인권연맹 회장은 “얼굴을 모두 가리거나 몸과 얼굴을 파묻는 베일은 대놓고 여성의 존재를 없애는 것과 같다”며 “부르카 금지법을 옹호해 달라”는 편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 신장을 위한 베일 금지 역시 이슬람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평의회 인권담당관인 토마스 함마베르그는 “부르카와 니캅 금지로는 억압 받는 여성을 해방시킬 수 없다”며 “오히려 부르카 금지법이 유럽 사회에서 이들을 더 소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스물 한 살 때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공공장소에서 니캅을 착용해 왔다는 프랑스인 스테파니 레퀴에(39)도 “나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니캅을 쓴다”며 “지금껏 보안 문제로 필요하다면 얼굴을 보여줬고 니캅이 인생의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르카 금지법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한 파키스탄 출신 프랑스 여성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남편을 포함해 누구도 내게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부르카를 쓰고 벗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법도 아니고, 여권 신장의 요구도 아닌, 오직 자신 뿐이라는 의미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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