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동네 대형마트에 가려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은 김정지(가명ㆍ43)씨는 곧바로 짜증이 났다. 골목에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좀처럼 비켜주지 않아서다. “빵빵” 차량 경고음을 눌러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 중에 여중학생이 ‘압권’이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차가 있는지 관심도 없다. “어이, 학생 좀 비켜!”라고 큰소리치자 여학생이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그냥 가면 되지 왜 소리를 지르세요”라고 대들었다. 차를 끌고 나온 것이 죄다 싶어 여학생을 뒤로 하고 대형마트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김씨는 아침 출근시간 지하철에서 낭패를 봤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이동하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걷던 젊은이와 부딪쳐 넘어져 손을 접질렸다. 계단에서 내려오던 젊은이가 미처 김씨를 보지 못해 부딪친 것이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김씨는 창피하기도 하고 화났지만 지각이 걱정돼 툴툴 털고 일어났다. 젊은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오전 내내 손목이 아파 점심시간에 병원을 찾았더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김씨는 또 홍역을 치렀다. 겨우 자리가 나길래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3명의 남자 고등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욕설을 섞어 떠드는 바람에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했다. 아무리 째려봐도 학생들의 욕설 섞인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10년만 젊었어도 주의를 줄 텐데 통 자신이 없었다. 17대 1은 고사하고 1대 1로도 맞불 수 없는 나이가 서러웠다. “조금만 참으면 내린다”라는 강한 신념으로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기야 스마트폰 때문에 지하철 잡상인도 장사를 포기했다고 하는데…
집에 돌아온 김씨는 드디어 폭발했다. “아빠 왔다”며 현관문을 열자 반갑게 뛰쳐나온 딸들이 김씨의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왜 그래, 뭐 필요한 거 있니?”라고 묻자 아이가 말한다. “아빠, 스마트폰 좀 줘. 밴드에 올릴 것이 있어서.” 하루 종일 스마트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김씨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딸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냈다. “오늘부터 아빠 스마트폰 보는 거 금지야. 어린 놈이 무슨 스마트폰이야!” 아이들에게 화를 내자 아내가 말한다. “그러는 당신부터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지 마. 아이들 버릇은 자기가 다 망쳐놓고 왜 신경질이야.”
스마트폰 사용자의 60%가 하루 평균 30번 이상 액정화면을 무심코 들여 본다고 한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6분에 한 번씩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보는 셈이다. 지난달 27일 서울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잠시라도 뇌를 쉬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신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대회가 열렸을까. 24시간 쉴 틈이 없는 우리 뇌가 “제발 좀 쉬자”고 신호를 보내도 무감각한 우리가 건강을 얘기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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