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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시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입력
2014.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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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작은 이야기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젠더와 미술’이라는 ‘작지 않은’ 제목이 붙은 이 자리는 사회 활동가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김주혜(수수)씨의 진행으로 동네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려 하는 ‘해방촌 4평학교’에서 이뤄졌다. 초대손님이었던 이치무라 미사코는 모든 것이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에 의문을 느끼고 11년 전부터 스스로 노숙자 생활을 시작한 활동가이며 예술가이다. 그녀는 도쿄 한복판 요요기 공원의 홈리스 커뮤니티인 ‘블루 텐트 마을’에 살면서 물물교환카페 에노아루를 운영한다. 또한 노숙자 여성이 만드는 생리대 브랜드 ‘노라’를 만들고, ‘여성을 위한 티 파티’, 도쿄 거리에서 노숙인과 행인이 함께 식탁을 둘러싸는 ‘246 키친’, 최근에는 2020년에 개최되는 도쿄 올림픽에 반대하는 ‘반 올림픽의 모임’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녀의 노숙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레드마리아’(2012년)의 주인공중 한 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그녀의 서울 방문은 이 모임 전에 열린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 강연시리즈 중에서 예술공동체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씨가 기획한 ‘점거의 기예’에 발제자로 초청되면서 이뤄졌다. 기획의 글에 따르면 ‘점거의 기예’에서의 점거는 “단지 시위의 하나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착취와 땅과 고향의 상실, 땅으로부터의 분리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하며 “또한 공공의 장소를 다시 공공으로 돌려 놓는 행위의 의미를 나누는 것”이다.

광주에서 돌아온 미사코씨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의 개막을 앞두고 특별전에서 불거진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둘러싼 검열 문제와 젠더의 관점에서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표현방법 등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를 비롯한 토론의 참여자들은 이른바 ‘민중 미술’이 가진 정치적 올바름과 젠더 감수성 사이에서 느꼈던 불화에 대해 말하기도 했지만 심지어 광주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조차 ‘검열’에 해당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서는 명백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사실 해방촌 4평학교에 모인 다수의 젊은 창작자들은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광주의 검열 사건 보다 그녀 스스로 전복하려 애쓰는 자본의 절대가치, 상상하기 힘든 삶의 극단적인 전환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학원에서 수료한 그녀가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3년. 당시 도쿄의 한 자취방에 거주하던 그녀는 집세를 벌기 위해 살고 있다는 전도된 느낌을 받았고 집세를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면서 작업의 즐거움도 점점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돈과 멀어지는 삶을 선택한 김주혜씨 또한 일정 기간의 숙소, 필요한 물건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그녀가 돌려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서 교환 방식을 찾는 등 자신만의 생활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는 물질적 가치에 묶이다 보면 다른 세계를 찾는데 방해가 되고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돈을 떠나 사람들이 서로 지켜보며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자리의 빈곤(jobless) 뿐만 아니라, 소득없음(incomeless)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는 미술계 내에서도 심각해서 많은 작가들이 전시를 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며 큐레이터, 인턴 등은 고학력 저임금의 비정규직 문제에 시달린다. 그래서 미술과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일인 기업’과 같은 주체와 활동으로 쉽사리 환원될 수도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우리는 어쩌면 이들과 같은 도시 수도자가 되는 방법 외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작은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미사코의 글을 보자.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욕망하도록 만들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어떻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거리에 눌러 앉아 버티는 것, 젠트리피케이션의 도시개발, 신자유주의, 배타적인 내셔널리즘에 대항하여, 그것들의 틈새에서 빛나고 있는 어둠으로 들어가, 촉각, 온도, 냄새, 소리 색, 맛을 느끼고 상상하는 생활의 실천을 시도해본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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