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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밑에 부서지는 푸른 파도, 혀 끝에 살살 녹는 붉은 대게

입력
2014.10.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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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ㆍ둘레...순우리말 이름 길들 속 톡톡 튀는 영어 이름 기억되는

맛과 멋 가득한 동해 바닷길 64km

서울서 자동차로 가장 먼 곳이지만 네 코스 대부분에서 바다 보여

지난해만 트래킹족 85만명 다녀가

경북 영덕의 푸른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블루로드의 해안 오솔길 구간에선 파도의 하얀 포말이 머리 위로 넘실거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영덕의 푸른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블루로드의 해안 오솔길 구간에선 파도의 하얀 포말이 머리 위로 넘실거린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국의 걷는 길 가운데 유독 튀는 이름의 길이 하나 있다. 올레, 둘레, 바우, 솔마루 등 대부분의 길들이 순우리말을 고집하는데 이곳은 과감히 ‘블루로드’라고 영어로 이름을 지었다. 경북 영덕의 푸른 해안과 함께 이어지는 길이다. 비슷하게 들리는 다른 길들과 달리 쉽게 기억되라고 한 전략인데 결과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지난 해에 이 길을 찾은 방문자 수는 85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순위로는 전국 590여 곳의 걷는 길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이다.

서울에서 차로 여행 갈 때 가장 먼 곳이 바로 영덕이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릴 만큼 낙후된 영덕의 교통 환경을 감안하면 블루로드의 인기는 전국 트레킹 코스 중 최고라 할 만하다. 대게와 송이로 유명했던 영덕에 블루로드는 이제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긴 것이다.

블루로드란 이름처럼 이 길의 80% 정도에선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총 64㎞로 A, B, C, D코스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길이 안내대로 따라가다 보면 영덕대게가 집산하는 강구항의 펄떡이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고, 풍력발전단지에서 드넓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고, 목은 이색의 고향인 괴시마을에서 오랜 전통을 느낄 수 있고, 파도가 머리 위로 넘실거리는 해안 오솔길도 만날 수 있다. 길은 이렇게 다양한 풍경과 정서를 만나게 하고, 오랜 시간의 더께를 스치게 한다. 영덕군은 블루로드를 ‘맛과 정취가 어우러진,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블루로드를 걸어 본 이들이 최고로 꼽는 구간은 ‘환상의 바닷길’로 요약되는 B코스다. 창포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이어지는 15㎞의 구간이다. 블루로드란 이름을 낳게 한 푸른 길이다. 낚시꾼이 갯바위 낚시를 위해 다니고, 해안가 군부대 군인들이 다니던 해안초소로 근무를 서기 위해 다니던 길을 이었다.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말 그대로 ‘옥빛 바다를 감상하며 거닐 수 있는 블루로드의 백미’로 손꼽힌다. 바로 옆에서 치오르는 파도의 전율을 만끽할 수 있다.

B코스 중간쯤에 있는 석리마을은 ‘따개비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가파른 절벽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 멀리서 보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가 연상돼 그리 불린다. 집들 뒤론 조릿대가 숲을 이뤄 독특한 경치를 펼쳐낸다.

B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대게원조마을인 차유마을이다. 지금의 영덕대게를 있게 만든 마을이다. 이곳에선 바깥에서 잡은 게를 절대 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엔 대게잡이 배가 22척. 이들이 잡은 대게는 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대부분 팔려나간다.

블루로드가 처음 길을 잇기 시작한 A코스의 출발점은 강구항이다. 강구버스터미널 문 밖에 바로 블루로드 시작을 알리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길은 강구항의 좁지만 그래서 더 정겨운 골목을 지난다. 예전 강구를 뜨게 했던 드라마, 최불암 박상언 최진실 송승헌 등이 출연했던 ‘그대 그리고 나’에서 그들이 올라가는 길이 이랬다.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고 수산물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들락거려 하루 종일 부산한 항구가 발 아래로 펼쳐 보인다.

A코스의 마지막이자 B코스의 시작점은 거대한 풍력발전단지 아래 해맞이공원이다. 이곳엔 대게의 다리를 형상화한 창포말등대가 우뚝 서있다. 풍력발전단지는 바람을 이용한 국내 최대 상업용 발전단지로 총 24기가 가동되고 있고 2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풍력발전단지에는 영덕군청이 운영하는 캡슐 캠핑장도 있다.

C코스는 축산항에서 시작해 대소산 봉수대로 오른다. 대소산 봉수대는 동해안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는 봉수대로 영덕 바다 최고의 전망대다. 축산항을 왜 그리 아름답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봉수대에서 이색 산책로를 따라 가면 괴시리 전통마을과 맞닥뜨린다. 고택이 늘어선 마을은 제법 규모가 크다.

동해안 3대 평야인 영해평야 옆에 자리한 괴시마을은 정도전의 스승이자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이다.

마을길은 여느 전통 마을의 돌로 된 담장과 달리 흙을 짓이겨서 만든 흙담이다. 250여 년 전에 지은 집들이 대부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괴시마을은 본래 상당히 폐쇄적인 마을이었다. 군청 공무원들이 유교문화사업을 위해 조사를 하려고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마을 분위기는 달라졌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대부분 대문을 열어둔다.

영덕군 문화관광과 신다영씨는 “괴시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비가 잘 돼 있다”며 “최근에는 고택음악회 등 공연도 자주 열린다”고 말했다.

매년 4~11월까지는 주말마다 부녀회에서 괴시마을 고택문화체험 강좌도 운영한다. 마을 중심에는 400여 년 수령의 버드나무가 있는데 매년 한마당축제가 열리면 주민들은 나무에 새끼줄을 매고 소원종이를 내건다.

괴시리마을을 나서 이어진 블루로드는 ‘명사이십리’로 불리는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의 송림숲과 백사장을 지난다.

올해 2월 완공된 새 구간인 D코스는 영덕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대게공원에서 장사해수욕장, 경보화석박물관, 남호해수욕장, 삼사해상공원, 어촌민속전시관을 거쳐 강구터미널까지 이른다. 쪽빛바다와 한적한 마을 길을 다니는 구간으로 한국전쟁 때 미국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유인작전인 장사상륙작전 전적 기념비와 3,000여 점의 화석박물관을 지날 수 있어 아이를 둔 가족이 함께 걸으면 좋다.

매 음력 보름이면 블루로드는 황홀한 달빛 속 길을 나서려는 달맞이 여행객들을 만난다.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 개최되는 달맞이여행은 블루로드와 관련해 가장 인기 있는 행사다. 된다. 영덕 지역 자생단체가 돌아가며 추진하고 있다. 구간은 창포해맞이축구장을 기점으로 비행기전시장, 산림생태체험단지를 지나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을 통과한 후 다시 출발지점인 해맞이축구장으로 돌아오는 4km코스이다. 관광객 전은재(38?포항 남구 연일)씨는 “블루로드 달맞이여행에 자주 참여하는데 달빛, 별빛과 함께 오징어 집어등이 연출하는 영덕 바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블루로드 전 구간을 다 걸으면 20시간 정도가 걸리는데도 매달 완주메달을 받아가는 탐방객이 2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덕군은 상주-영덕간 고속도로와 포항 KTX 직결노선이 개통돼 영덕을 찾는 길이 편해지면 블루로드를 찾는 관광객도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덕군 김삼규 문화관광과장은 “교통낙후지역이었던 영덕이 광역교통망 구축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며 “역사적 소재를 활용한 문화콘텐츠 발굴로 블루로드를 4계절 내내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로 만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영덕=김정혜기자 k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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