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폭언에 대리운전까지… 인권 없는 대학원생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교수 폭언에 대리운전까지… 인권 없는 대학원생

입력
2014.10.30 04:40
0 0

14개 대학원 총학생회 조사 45% "교수 부당처우 경험"

차별 금지·근로시간 준수 등 14조 명시한 권리장전 선포

29일 서울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열린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권리장전 선언식'에서 참석자 대표들이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제공

“석사 논문 심사 때 정장을 입고 온 여학생에게 교수님이 ‘너는 그렇게 입으니까 도우미 같다’고 말했습니다.”(공학계열 대학원생 A씨, 23세)

“교수님 아이들의 학교 숙제, 에세이 등을 대필해 준 적이 있고, 개인적인 종교행사에 동원돼 참석한 적도 여러 차례입니다.”(자연계열 대학원생 B씨, 29세)

“처음에 알고 들어온 것과 너무 달라 박사과정을 다른 곳에서 하고 싶다고 지도교수에게 간곡히 말했지만 7시간 가량 폭언과 협박을 들었습니다.”(공학계열 대학원생 C씨, 22세)

학문 연구를 위해 대학원을 택했지만 정작 교수들의 노예처럼 사적인 일에 동원되거나 성희롱ㆍ언어 폭력 등을 경험한 대학원생들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당 처우에 견디다 못한 대학원생들은 차별 금지, 근로시간 준수 등의 내용을 명시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만들어 선포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와 전국 14개 대학의 대학원 총학생회는 카이스트, 포스텍 등 전국 대학원생 2,354명을 대상으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5.5%(1,071명)가 ‘언어ㆍ신체ㆍ성적 폭력이나 차별, 사적노동, 저작권 편취 등 부당처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29일 밝혔다. 청년위원회와 대학원 총학생회들은 이날 서울 광화문 드림엔터에서 14조로 구성된 권리장전 선포식을 가졌다.

대학원생들이 겪은 부당처우는 유형별로 언어ㆍ신체ㆍ성적 폭력 등 개인존엄권 침해가 31.8%로 가장 많았고, 자기결정권 침해 25.8%, 물질적 대가요구 등 학업 연구권 침해 20.2%의 순이었다. 저작권 침해도 10명 중 1명(9.5%)이 경험했다고 답했다.

의약계열 D(31)씨는 “논문 심사 날 다과를 준비했는데 교수가 ‘이런 싸구려를 가져오냐, 넌 논문 두 번 다시 못 쓸 줄 알라’며 다과를 집어 던지는 등 폭언과 폭행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공학계열 E(29)씨는 “술자리에 참석한 여학생들을 외모로 등급을 매긴 후 놀려서 모욕감을 느꼈다”며 “싫다는 의사표현을 계속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교수의 개인적인 일에 대학원생들이 동원되는 사례도 많았다. 자연계열 F(31)씨는 “자녀의 과외를 무료로 시키는 경우가 있으며 교수 이사하는데 대학원생들이 이삿짐을 날랐다”고 말했고, 공학계열 G(26)씨도 “대리운전, 설거지, 쇼핑 등 자잘한 심부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한다”고 전했다.

논문, 졸업작품, 학점, 장학금 혜택을 주는 대신 선물이나 접대, 금품, 노력 제공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인문ㆍ사회계열 H(32)씨는 “논문 심사 명목으로 심사위원 1인당 50만~1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라며 “심사 중 한우나 고급일식당의 식사 제공을 강요 받고, 응하지 않을 경우 심사 불합격을 포함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I(25)씨는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인건비가 나오지만 통장과 도장을 강제로 걷어 가 실제 30만원의 용돈만 받는다”고 토로했다.

논문이나 연구 실적을 가로채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J(26)씨는 “공동연구로 시작한 논문을 혼자 완성했으나 지도교수의 연구 실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저자에서 배제됐고, 다음 논문도 공동으로 한다고 하더니 계획서 제출 이후 저자가 될 수 없다고 하더라”며 하소연했다. K(27)씨는 “학위과정에서 자르겠다고 갖은 협박을 하더니 교수 부인의 이름을 공저자로 기재하라고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65.3%의 대학원생들은 폐쇄적인 학계 풍토, 엄격한 상하관계 때문에 부당 처우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학점ㆍ졸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48.9%),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 등의 이유였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