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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신해철에게 바침

입력
2014.10.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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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죽었다. 모든 죽음은 급작스럽게 닥치지만, 그의 죽음은 너무 뜻밖이다. 그가 서울의 모 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은 뒤 갑자기 심장이 정지됐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그 증상이 대단히 위중하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도, 며칠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끝내 그는 깨어나지 못했고,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의 여파로 그의 죽음이 의료사고로 인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됐고, 그의 음악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던 많은 이들은 신해철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묘비명이 될 것이라던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상실의 슬픔을 달랬다. 참 허망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단정하게 빗은 머리와 새하얀 얼굴로 ‘그대에게’를 열창하던 앳된 신해철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터라, 내게 그는 항상 스무 살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승환, 윤상, 김현철, 유희열 등 동시대 음악인들 가운데 그의 음악이 더 가치 있다거나,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는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가수들은 사랑과 이별, 외로움과 그리움 등으로 범벅 된 가사를 부를 때, 단연코 신해철은 달랐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등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무언가 멋졌다. 사춘기의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신해철의 그런 분위기에 매혹 당했다. 또래 여자아이들이 이승환과 윤상을 들을 때, 우리는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했던 인기 장소였던 노래방에 몰려가 곧 죽을 듯한 비장함으로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를 찾고, 한껏 낮은 목소리로 ‘재즈카페’의 랩을 중얼거렸다. 마지막엔 항상 ‘그대에게’를 합창하며 작은 노래방에서 방방 뛰었다. 그렇게 한바탕 그의 노래들을 부르고 거리에 서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며, 성적에 맞추지 말고 정말 내가 원하는 학문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이 서곤 했다. 심지어 그가 철학과 학생이었기에 우리는 철학이야 말로 진정한 남자의 학문이라며 한동안 니체와 세네카의 이름을 읊고 다녔다. 우린 모두 ‘중 2병’ 환자였고, 신해철은 그 병의 창시자이자 유일한 의사였다. 그는 우리의 ‘마왕’이었다. 만화 주인공 같은 그 별명이 참 잘 어울렸다.

남들처럼 우리도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 아무도 철학과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입시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그의 음악은 큰 역할을 했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집으로 갈 때 듣던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등과 같은 노랫말은 구구절절 내 마음을 울렸다. 대학생 때 본 영화 ‘정글스토리’에 삽입된 그의 노래 ‘70년대에 바침’은 박정희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로 시작해 전두환의 대통령 후보 연설로 끝난다. 그리고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여전히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는 가사는 그답지 않게 애매모호해 이상했다. 처음으로 내가 태어난 시대의 한국 역사를 찾아 공부했고, 그가 그렇게 밖에 노래할 수 없었던 이상함이 조금은 이해됐다. 그 때부터 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내 청춘의 여러 모퉁이에서 그는 음악으로 동행해주었다. 그 후로 마왕을 음악보다 시사프로그램의 패널로 더욱 자주 보았다. 대마초 합법화, 간통죄 반대, 학생 체벌 금지 등 연예인으로서는 선뜻 나서지 못할 민감한 주제에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로커의 옷차림으로 우리 시대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모습은 그였기에 가능했었다. 그는 호불호가 확연히 나뉘는 가수였고, 물론 그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후로도 그는 원하는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듯 보였다.

그가 죽은 다음 날 아침, 서울은 올해 들어 가장 추웠다. 차가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빚어낸 투명한 공기의 맑음을, 먼저 떠난 그에게 바친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음악을 하시길 바랍니다. 굿바이, 마왕!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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