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후 여야 지도부와 회동해 주요 정치현안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취임 첫 해인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현직 대통령이 2년 잇달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모처럼 자리를 잡아가는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정치관행으로 정착될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우선 반갑다.
아울러 시정연설과는 별도로 여야 지도부와 회동한 것도 모처럼 보기 좋았다. 적어도 모양새로는 대통령의 적극적 정치행위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합했다. 여야 대표(새정치민주연합은 비대위원장)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몇 가지 요청 외에는 말을 아끼고 주로 야당 지도부의 요청과 제의를 경청했다고 한다. 앞서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새해 예산안과 관련법안, 국민의 살림살이 개선을 위한 각종 ‘경제 살리기’ 법안의 조속한 처리 등을 호소했다. 캐나다 호주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과 공직사회 정화를 위한 ‘김영란법’의 신속한 처리도 당부했다.
대통령의 이런 자세에 야당도 일부 화답했다. 회동 후 여야 정책위의장이 15개 항으로 정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여야는 세월호 관련 3법을 합의대로 월말까지 처리하고, 다른 민생법안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또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를 거듭 다짐했다. ‘김영란법’의 진지한 논의와 조속한 처리도 약속했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모두 서로의 이념ㆍ정책 노선에 따른 원칙은 견지하되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동의 결과만 놓고 보면 예산국회, 정기국회의 남은 일정이 전례 없이 순탄하리란 기대를 낳을 만하다. 물론 이날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 회동에 대한 야당 주류의 시큰둥한 반응에서 보듯, 실제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현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정치행위가 ‘모양 갖추기’에 치우치다 보면 내용과 실속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아직 무성하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어제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애써 보여준 형식미(形式美)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 최선이지만, 상식에 맞는 형식적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진심이 깃드는 것도 차선은 된다. 따라서 정치쟁점을 놓고 서로 다투고 비난하던 상대와도 형식적 정치무대에서의 대화와 타협에는 열의를 보여야 한다. 그런 행동이 습관화할 수 있어야 당리당략과 정파적 이해 갈등 대신 합리적 이성을 견주는 진정한 정치가 가능해진다. 어제 청와대와 여야의 정치행위가 보여준 가능성이 신기루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성의를 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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