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5년 1월부터 담배 값을 2,000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흡연율 억제와 신규 흡연자의 유입을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국가편의주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담배에는 최소 69종의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1급 발암물질만 11종이다. 니켈, 벤젠, 비소, 카드뮴, 포름알데히드, 나프탈렌, 납, 코발트 등 유해물질 투성이다. 니코틴의 중독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마약 중독 못지않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유해물질을 규제하지도 않고 있고 담배제조기업에게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으로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흉내만 내고 있다. 담배 값 인상은 담배소비자에게 엉뚱한 책임을 전가하는 처사이다.
정부는 그 동안 담배로 거둬들인 세금을 어디에 사용했을까? 매년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은 7조원 정도이며, 이 중 국민건강증진기금은 2조3,000억원 규모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담배 부담금만으로 조성된다. 부담금은 일반 조세와 다르기 때문에 흡연과 관련한 국민건강의 증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담배 관련 건강 문제 또는 금연사업 등에는 전체 기금 지출액의 1% 수준인 218억원 정도를 사용했을 뿐이다. 수입의 65%인 1조원 정도는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차상위 계층을 편입하고 법정 국고지원 기준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병 주고 약 주면서 국가는 빈손으로 돌려막기만 하고 있다.
담배로 유발되는 건강보험 진료비가 1조5,000억원 정도이므로 오히려 그 차액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건강보험공단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비만과 음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규모는 각각 2조7,000억원, 2조5,000억원 수준이다. 담배로 인한 진료비 지출규모의 약 1.7배다. 그러나 정크푸드와 주류에는 추가적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또한 금연을 위한 치료 등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건강보험 재정적자 지원 주장이 설득력 없게 들리는 이유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본래 취지에 맞게 집행해야 한다.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가 지원 미납분을 완납하고 국고로 차상위 계층을 책임지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운용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가 연도별 기금 운용 계획안과 결산 및 평가에 대한 심의를 담당하는데, 그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차관이기 때문이다. 기금의 운용에 대한 감독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문제점은 기금의 배분과 사용에서 드러난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반회계 사업비용을 특별 목적을 위해 마련된 기금을 통해 충당하기도 하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일반회계 사업에 행정 편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가의 쌈짓돈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담배로 인한 국민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담배 전매를 통해 재정을 확보했던 과거도 있다. 비흡연자와 흡연자, 그리고 흡연구역 지정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금연구역만 마구잡이로 확장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담배 세금을 징세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폭적인 담배 세금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민증세의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선 정부는 건강에 해로운 담배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다음으로 담배 세금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국민건강증진기금은 흡연 예방, 금연 치료, 흡연자 및 비흡연자의 건강 증진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담배 세금의 대폭적인 인상은 조세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국가의 무능력이 드러난 시점에서 국가의 무책임까지 더해진다면 사람들은 국가 없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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