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사기로 억대 챙긴 일당 검거
전직 대통령 비자금 관리인을 사칭해 돈을 떼먹는 사기가 잇따르는 가운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비자금까지 사기에 동원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박모(50)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로비자금만 주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85)의 비자금 중 2,300억원을 1% 이하 저리로 융자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역삼동 한 빌딩 관리부장 이모(45)씨에게 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고급 유흥주점에 드나들며 50여회에 걸쳐 이씨에게 1억원 상당의 접대비를 추가로 뜯어냈다.
박씨 등은 피해자 이씨가 일하는 빌딩이 경영난으로 임금까지 체불된다는 것을 알고 빌딩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재분양하자고 꼬드겼다. 자금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실각했을 당시 이멜다가 한국의 은행들에 숨긴 비자금을 풀어서 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ㆍ관계 인사에게 로비가 필요하다고 이씨를 속였다.
박씨는 믿지 못하는 이씨에게 자신의 동향 친구가 이멜다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 친구가 이멜다의 ‘금고 관리인’”이라고 말했다. 공범 A(57)씨는 친구 밑에서 일하는 실무진이라고 소개했다. 3,750억달러 상당의 채권 사진까지 보여주자 이씨는 결국 속아 넘어갔다.
이씨는 아파트 담보대출과 카드론, 동생의 결혼자금과 신용카드, 누나의 돈까지 빌려 집도 잃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일당은 가로챈 돈을 사설경마,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멜다 비자금은 실체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씨가 두 딸과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차마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과 이멜다 등은 집권기간 20년간 100억달러(한화 10조5,000억원 상당) 이상을 축재했으나 필리핀 정부가 환수한 금액은 지금까지 절반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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