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한국일보 사회부 정재호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입니다. 정 기자는 故신해철이 이끌던 그룹 'N.ex.T'의 열렬한 팬입니다. 기자의 동의 하에, 팬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가 느낀 감정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사화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디지털뉴스부
Dear, N.ex.T
비통함과 원망, 후회와 증오가 그득한 세상사를 글로 옮기는 직업을 가지고 8년을 지냈다. 어떤 이의 죽음이 기사 한 줄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스며든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그들의 애달픈 사연과 허망함을 드라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시간이 지날수록 한 인간의 영원한 공백들은 차츰 현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던하게 사는 날들이 어쩌면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던 듯 하다.
그런데 올해 나는 타인의 죽음에 두 번이나 울었다. 바다 속으로 수장되는 아이들의 죽음이 보내는 거대한 슬픔에 불가항력적인 눈물이 흘렀고, 신해철이라는 한 뮤지션의 죽음에 내 청춘의 찬란히 아픈 기억이 화장되는 슬픔을 눈물로 받아 들였다.
돌아보건데, 청춘의 기억이란 언제나 메모리 주체의 의지에 따라 각색되고 의미 지어졌다. 그래도 이놈의 기자 습성은 자꾸 기억의 팩트를 찾는다. 돌아본 팩트, 혹은 팩트라 기억된 추억들은 왜 그리 찬란한가. 그를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죽음으로 각인되는 그의 이름과 추억은 이제 그가 그토록 원하던 영원을 얻은 듯 하다.
생각해보니, 초등시절 장기자랑 시간에 꽤나 간지 내며 불렀다 자평했던 '위스키 블랜디 로젠하임'부터 '매니가지올왜이턴유라운드'로 그와 안녕을 이야기한지가 20여 년이 넘는다.
중3 불타는 여름. OO고교를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내 생애 처음 느낀 성공으로의 압박 속에서, 그 해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명승부를 벌였던 그날 밤 학원 자습실이었던가. 아이들과 축구보면서 놀면 안 된다는 강박을 떨치려 해철 형님의 '껍질의 파괴' 앨범을 들었다. 드리머가 전하는 절망에 관한 해철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메인 테마의 신디 독주에 피를 끓이고, 끝내 그 어느 바다에서 강렬한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그 어느 시점. 아침 해가 분명 떠올랐다.
나는 그날 몰랐던 한 단어. 락의 이름으로 새겨진 주홍색 앨범 첫 장에 새겨진 NexT가 New. experience. Team이라는 사실에서 스스로의 화두를 얻은 듯 했다. 지금보다 다음을, 지금의 삶이 결국 내일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그 내재된 긍정의 진취. 어린 나이라 몰랐던 그 화두는 인두에 지진 듯 강렬하게 내 청춘을 관통했다.
그 뒤 그의 앨범과 노래에 심취하고 탐닉했음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할까. 사람들이 모르는 숨은 트랙의 거의 모든 노래를 외우다시피 아는 내가 아직도 자랑스러울 정도라면 어떨까. 파나소닉 카세트에서 소니 CD플레이어에서 MP3, 스마트폰으로 디바이스만 바뀌었을 뿐 한번도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은 그의 노래들은 때론 실연의 아픔에 슬픈 표정 짓지 말라 말했고, 도서관에 애벌레처럼 꿈만 꾸던 나에게 민물장어의 사연을 들려줬으며, 상사에게 개박살난 나에겐 ‘잇츠 올라잇’이라 토닥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고 우리의 아이가 그녀의 가슴 속에 잉태됐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나는 잠 드려는 아내의 배를 베고 '아가에게'를 불러줬다. 아내는 그 노래가 참 좋다 했다. 고마웠다. 앞으로 아내에게 형님의 주옥 같은 노래와 그 노래를 듣던 과거의 나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연과 노래만으로도 족히 몇 년의 시간은 풍성한 이야기 꽃을 피우겠구나 웃던 찰나. 그가 병원으로 향했다.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다' 노래했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을 예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이 예정되면 그의 히스토리와 사람들의 반응을 따지던 기계적인 기자의 나는 없었다. 그가 내게 3자가 아님을 그렇게 느꼈다.
아내의 생일까지. 그의 죽음은 뉴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날 비루한 월급이라 큰 선물은 못해 주는 남편은 그녀가 좋아하는 스카프에 손 편지 한 장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악셀만 밟아댔다. 다만 프로포즈 때 부르려 아껴뒀던 노래로 가벼운 선물을 대신하리라 마음먹으며. 수도 없이 들어 외우려 한 적도 없는 그 노래를 수줍게 불렀고, 아내는 2절 무렵 내 품에 안기었다. ‘해가 저물고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여 그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며 조용히 잠 들고 싶어’. 노래는 끝났고. 난 세상이 정한 결혼식과 상관없이, 온전히 한 여자를 내 인생에 정식으로 초대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가 떠났다. 거짓말처럼, 나에게 가족을 초대하는 길을 만들어주고. 그는 27일, 아내를 세상에 보내준 날. 영원의 길을 떠났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발라드와 '그대에게'와 같은 히트송으로 그를 추억한다. 서로 내가 형님의 오리지널 팬이라 자처한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한 노래로 그를 추억하기 어려워 난감한 마음이다. 멋지게 그를 보내고 싶었으나, 이 노래로 보내드리자 드리자 하면서 술잔만 늘어날 뿐이었다.
하여. 그를 보내지 않기로 한다. 언젠가 내가 문화부 기자가 돼 명함에 새겨진 내 바이라인을 보며 씩 웃어줄 그를 만날 날은 이제 없지만, 그가 남긴 노래로 청춘을 이겨낸 내가 그의 이름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하려 한다.
나의 기자 바이라인은 next88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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