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잘 살피면 역사가 보인다. 동전 한 잎 줍는 정도의 횡재를 맛볼 수 있다. 북적대는 서울 명동 거리에서 발견한 맨홀 뚜껑 이야기다. 지름 약 70cm 크기의 주철 재질로 다른 맨홀 뚜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체신부 1호’라는 글자만 빼고. “체신부라고? 언제적 기관이…” 뚜껑 표면에 볼록하게 처리된 글자는 무거운 세월에 밟혀 군데군데 눌리고 닳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물건일까?
1948년부터 우편 통신업무를 주관하던 체신부는 1994년 정보통신부로 개편된 후 2008년 방통위, 지식경제부 등으로 분리 수용됐다. 비록 체신부는 사라졌지만 통신서비스 업무는 한국통신을 거쳐 현재의 KT로 이어지고 있다. 체신부가 설치한 통신 케이블은 물론이고 맨홀 뚜껑까지 KT가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KT는‘체신부 1호’뚜껑의 나이를 38세라고 밝혔다. “지하관로의 건설 연도를 볼 때 1976년에 설치한 맨홀 뚜껑이며‘1호’의 의미는 ‘맨 처음’이 아닌 규격 표시일 뿐”이라는 설명과 함께.
체신부의 또 다른 표기‘체’와 함께 한국통신 초창기의 무궁화, 그 후 다이아몬드 로고도 역사의 기록물처럼 길 바닥 곳곳에 남아 있다. 두루넷 하나로통신 데이콤 파워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 때 초고속인터넷사업의 전국시대를 다투던 업체들의 뚜껑에선 시장 경쟁의 무상함마저 느낄 수 있다. 두루넷과 하나로통신(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로, 데이콤 파워콤은 LG U+로 흡수 합병됐다.
궁금증은 오래된 맨홀 뚜껑의 안전성으로 이어졌다. 38년 혹은 그 이상 된 철판이 과연 멀쩡할까? KT측은 정기적인 점검과 확인을 통해 파손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뚜껑을 교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리엔 수 없이 많은 맨홀이 존재하고 정확한 제조연도를 알 수 없는 뚜껑들이 그 위를 덮고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뚜껑이 내 주변에 있는지, 누구에 의해 어떻게 관리 되고 있는지, 위험하진 않은지. 알면 알수록 뚜껑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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