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생기면 그냥 덮어둘 일이 아니다. 제대로 부위를 살펴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판단을 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치료과정을 견뎌야 한다. 가슴이라는 내면에 드리워진 상처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살점이 찢긴 것이 아니기에 그대로 놔두면 자신이 지닌 삶의 이유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무척 크다. 상처 입은 영혼이라면 스스로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 살아가는 힘을 되찾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절실하다.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 이후 언젠가부터 사진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게 됐다. 더불어 자기내면의 그림자에 치인 이들에게 자신을 살피는 도구로써 사진 ‘행위’를 권한 지 꽤 오래됐다. 누구나 사진은 그 자신이 어떤 대상과 마주하는 ‘양자대면’이라는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치유의 도구로써 사진이 지닌 특성이 발휘된다. 자신의 눈앞에 놓인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내면에 드리운 아픈 ‘감정’이라는 또 다른 실체와 스스로 ‘직면’함으로써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역동의 힘이 발현되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내면에 쌓인 어두운 감정과 당당히 맞대응 하면서 시린 기억의 무게를 덜어내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진치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렌즈는 ‘바깥’을 향해 있더라도 사진은 자신의 ‘안’에서 생성되는 시선의 매개체이다. 외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기운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찾게 된다는 점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기를 돌보는 자위적 행위가 가능한 것이 사진의 또 다른 쓰임새인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 상처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외면해온 세월이 이미 녹록하지 않거니와, 아픔과 고통의 시간 역시 그만큼 쌓여 있는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34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의 거리 한복판에 선 이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상처는 너무도 모질기만 했다. 폭압적인 국가폭력에 책임 있는 이들의 성심 있는 반성과 사죄도 없었고 무심히 흘러간 세월의 무게까지 더해지면서 회복의 기미는 참으로 더디기만 했다. 기회가 닿아 광주 트라우마센터를 오가며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아홉 분과 2년 가까이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이들에게 드리워진 상처는 깊이 곪아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들 모두 죽음의 순간을 겪은 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든 그들은 다시 한 번 큰 용기를 내 자신의 아픈 기억과 당당하게 마주 했다. 여전히 끓는 피를 애써 다독이면서 또한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안의 걸음을 담대하게 내디뎠다. 격한 울분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고 먼저 생을 마친 이들에 대한 한없는 죄스러움에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사진을 통해 그 모든 기억속의 상처와 대면한 그들은 직접 담아낸 사진들을 모아 광주, 서울, 대구를 거쳐 10월 16일 부산 민주공원 갤러리에서 ‘오월 광주 치유사진전-기억의 회복’전을 열었다. 핏빛으로 물든 그 해 5월을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수많은 광주시민들을 대신해 이제 망각의 뒤안길로 흘러가는 ‘그 날’의 기억을 다시 세상에 꺼내 놓은 것이다. 이 전시는 흘러간 역사를 ‘작품사진’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존엄한 삶의 가치를 80년 5월의 희생자들 자신이 온몸으로 전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당시 도청 앞 전일빌딩 후문 계단에서 계엄군에 붙잡혀 온몸을 군홧발로 짓밟혔던 황의수(61ㆍ사진)씨는 지난해 여름 33년 만에 처음으로 그 계단 앞을 찾아갈 수 있었다. 소름 돋는 공포의 기억이 다시 그를 감싸 안았지만 몇 번의 반복되는 걸음 속에서 한결 차분해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됐고 오히려 지금은 그곳을 자주 찾기까지 한다. 다양한 구도와 시선으로 그 계단을 찍게 되면서 오랜 시간 지녀온 두려움의 일부를 덜어냈다는 말과 더불어.
어느새 마디마디 굵어진 주름 가득한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들려 있다. 어디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가슴으로 기록하게 된 그의 몸짓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은 너나 할 것 없이 삶은, 그리고 생명은 소중하다는 명백한 진리, 그것이었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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