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과목 쪼개기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학생이 아닌 사범대학 교수들입니다.” 이덕환(사진)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24일 한 과목을 지나치게 잘게 나눠놓은 교육과정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최근 논의 중인 2015 개정 교육과정 역시 겉으로는 융합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과목의 편식과 학력 저하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을 지낸 그는 최근 과학교육 확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ㆍ이과 구분 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배우는 교육과정 개편이 진행 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과목 쪼개기가 심각한 문제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게 명분이다. 한 과목을 여러 개로 나눠 그 중에 몇 개만 듣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어의 경우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문법’이 빠졌다. 반면 정확하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과목인지 모르겠는 ‘화법’은 남아 있다. 1997년 7차 교육과정에 있다 없어졌던 ‘매체언어’가 과목명만 ‘매체와 언어’로 다시 생겼다. 문법보다 매체와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원칙이 뭐냐는 거다. 또 세계사가 있는데 동아시아사를 따로 갈랐다. 문법을 안 배운 학생, 동아시아사를 안 배운 학생이 나오는 거다. 이런 교과개정은 지식의 편식을 강요하고, 학생 선택을 위한 게 아니라 학생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왜 과목 쪼개기인가.
“과목을 나눠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과목이 새로 만들어지면 교과서를 써야 하는데 사범대 교수들이 쓴다. 과목증설은 교사 수급과도 연결된다. 이 모든 게 사범대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 과학은 지난 60년간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사회과는 한때 과목 수가 11개까지 쪼개졌다. 그 결과 교사 수가 뒤집혔다. 과거에는 사회와 과학 교사 비율이 1대 1이었지만 사회 선택과목이 생기면서 2대 1이 됐다. 사회교사는 계속 증원하고, 과학 교사는 학교에서 필요가 없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 고교의 과학교사는 870명, 사회과는 940명 정도다. 문과학생의 수가 이과생보다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학생들이 그 많은 교과를 선택할 수 있나.
“그렇게 쪼개놓고 교사가 부족해 수업을 개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 편중 문제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없다. 그러니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사범대 교수들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과목이 많다.
“과학은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간 전문성을 굉장히 강조한다. 물리교사가 화학을 모르고, 지구과학교사가 생명과학을 모른다. 그 벽을 허물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는 과목 쪼개기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국어, 사회, 수학 과목에서 특히 심하다. 예를 들어 일반사회 교사가 경제, 법과 사회, 정치 등을 가르친다. 국어교사가 있고 문법교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왜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가르치느냐는 거다. 사회는 융합을 요구하는데 교육학자들은 과목을 쪼개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과학도 물리 과목을 고전역학, 전자기학, 현대역학 등으로 충분히 쪼갤 수 있다. 나누자면 끝이 없다.”
-해결책이 있나.
“교원양성 체제의 변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범대는 일반사회교육과, 역사교육과, 지리교육과처럼 과목별로 전공이 나뉘어져 있어 자기 전공밖에 모르고, 교과이기주의를 부추긴다. 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융합형 지식인을 기를 수가 없다. 사범대학을 나오지 않은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교육대학원 등을 수료하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허용 해야 한다. 일본식 제도인 사범대학은 없애도 된다.”
-과목 수만 정리되면 문제가 없나
“학교에 자율성을 준다면서 최소 이수단위를 최소화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수능에 유리한 국영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율형 사립고에 교육과정 운영상에 자율성을 줬더니 결국 국영수 위주 수업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새 교육과정이 내세우는 문ㆍ이과 통합도 미사여구에 불과하고 속내는 국영수 집중교육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