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린 지음ㆍ박산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발행ㆍ316쪽ㆍ1만3,000원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 미성숙의 가장 명징한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흠모하는 사람의 연인이 되고 싶다거나, 모두가 중요하다고 일컫는 과업을 이루고 싶다거나, 소소하게는 모두가 탐내는 물건을 갖고 싶다는 욕망까지.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내면화하며 맹렬히 돌진하는 삶은 비단 청소년기의 특징만은 아니지만, 훗날의 그 어떤 성숙한 인간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은 이 삶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주목 받는 소설가 존 그린(37)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진지 빠는’ 문체는 일절 배제한 채, 시종 산뜻한 농담과 유쾌한 말장난으로 17세 청소년들의 ‘진짜 욕망 찾기’를 그렸다. 2006년 발표한 성장소설 ‘이름을 말해줘’다.
고교를 막 졸업한 소설의 주인공 콜린 싱글턴은 시카고 일대의 소문난 신동이다. 두 돌이 갓 지나 저 혼자 신문을 줄줄 읽기 시작한 이 아이는 라틴어와 아랍어를 비롯해 11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며, 미국 대통령은 물론 시대별 상원의원의 이름과 전기적 특징까지 모두 외운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박식이 사명인 이 소년은 한 해 전에는 크래니얼키즈라는 TV 퀴즈대회에 나가 우승을 거머쥐며 1만달러의 상금과 유명세까지 얻게 됐지만, 모든 신동들이 그렇듯이 친구들에게는 지독하게도 인기가 없다. 지식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콜린의 삶을 부축해주는 것은 유년 시절 첫 과외교사의 딸이었던 꼬마 소녀 캐서린에서부터 시작해 총 19명의 캐서린들과 이어나간 연애. 하지만 콜린은 이 열아홉번의 연애에서 모든 캐서린들에게 보기 좋게 차였다.
강박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강박이었던 ‘캐서린만 보면 사랑하게 되는’ 이 병증과 그녀들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역사적 팩트는 콜린을 더더욱 주입된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사랑을 확인하려고만 하는 그는 결국 열아홉번째 실연 통보를 받게 되고, 유일한 절친인 레바논계 친구 하산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모든 걸 공식으로 정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신동에게 이 여행은 19개의 케이스를 자료 삼아 ‘사랑의 지속기간과 실연 가능성에 관한 정리’를 도출해야 하는 일종의 ‘연구여행’이다.
소설은 콜린과 하산이 건샷이라는 테네시 지역의 한 공업도시에서 린지라는 동갑내기 소녀를 만나 그녀 어머니의 요청으로 한 집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콜린의 연애사를 간략히 삽입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탐폰의 줄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중인 린지의 어머니는 콜린과 하산에게 지역의 구술사 작성 작업을 맡기고, 미식축구팀 쿼터백 출신으로 동네에서 가장 멋진 소년과 연애 중인 린지가 이들의 작업을 돕는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소설의 끝에 콜린과 린지는 거짓 욕망들을 홀가분하게 떨쳐버리고 새로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무엇’과 ‘어떻게’만 알았을 뿐 ‘왜’는 알지 못했던, 고작 남들이 만들어 놓은 걸 남들보다 먼저 알았을 뿐인 콜린과 그에게 ‘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으나 자신 역시 가짜 사랑을 하고 있었을 뿐인 린지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더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설은 캐릭터를 상정했으면 끝장을 보여주는 작가의 집요함과 성실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별하게 설정하고 한 두 가지 예로 입증 책임을 끝내 버리는 어떤 작가들과 달리,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신동이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지식과 박식의 에피소드들을 끝없는 디테일들로 펼쳐놓는다. 수시로 아랍어와 아랍 문화ㆍ풍속을 보여주며 미국식과 아랍식이 혼융된 우정을 보여주는 하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점철된 세부들 덕분에 이 괴상한 소년들은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실제의 인간들로 독자의 머릿속에 잔상을 남긴다. 원제 ‘An Abundance of Katherines.’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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