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났다. 준비가 허술했고 운영도 어설픈데다 적자가 자그마치 1조원이 나 된다는 말이 들린다. 1조면 1,000억이 10개다. 이 돈 정말 아깝다. 이거 다 세금으로 메우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체육행사와 국제적 이벤트를 확 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즘 세월호와 관련해 여권에서 유난히 민생을 강조하는데 이렇게 전시성 성과와 치적홍보에 공을 들이는 짓이야 말로 민생파탄의 주범으로 보인다.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방법 또한 스포츠뿐이라면 부끄럽고 불편한 일이다. 기초과학을 토대로 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것을 스포츠로 덮으려 하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열리는 동안 채널마다 방송을 하고 있기에 몇 번 보긴 했는데 이런 국제적인 운동경기 중계를 볼 때마다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우선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한다. 비슷한 말, 아까 했던 말,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주고받는다. 필요한 정보만 전달해주고 잠시 지켜보는 그런 시간이 없다. 거기에다 무조건 이겨야 하며 우리 편은 좋은 사람이고 저쪽 편은 문제가 많은데다 자질 또한 의심스럽다는 억지가 매번 풍긴다. 그래서 채널을 돌리며 차분하고 세련되게 방송하는 곳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았다. 다들 경쟁하듯이 그러고 있으니까.
나도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엘리트체육의 보여주는 성과물에 목숨 거는 우리의 수준을 고스란히 확인해야 하는 찝찝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결승전에서 졌다고 분해하면서 땅바닥을 치는 선수, 올림픽에서 이 바보야, 소리를 내지르며 악을 쓰거나 금메달이 주님의 덕택이라고 말하던 해설자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좀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일등인 금메달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도 심한 편이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도 ‘소중한 동메달’이라는 소리 자주 나왔다. 누가 동메달을 따면 으레 하던 말이다. 동메달에는 무조건 ‘소중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자, 이렇게 정한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으면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저 그 단어 하나 붙여주고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당장 대회가 끝나고 이런저런 방송에서 선수들을 초청할 때 ‘소중한’ 동메달을 딴 선수는 몇 명이나 초대받았을까? 다 못 봐서 모르겠지만 극소수 이거나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메달집계로 순위를 매기는 것은 어떤 대회든 주관하는 곳에서는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수부터 따진다. 유럽 같은 곳에서는 금은동 안 가리고 메달 총 집계만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일등만을 찬양하고 추앙한다. 일등은 오직 한명 뿐인데 다들 일등을 하라고 난리다. 이거 이를테면 고등학교 학생들을 밤늦도록 학교에 잡아놓고 공부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3학년을 모두 밤 12시까지 공부시키면 서울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일까. 어차피 서울대 정원은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이제 넉넉한 성과금과 연금을 받고 차후 다른 대회 해설자로 나설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모셔가는 곳도 많을 것이다. 승자독식. 한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는 폐해는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 두루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다들 리더십만 강조한다. 이러니 일등 빼고는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다들 선장만 하겠다면 항해사, 조리장, 기관원, 갑판수는 누가 하겠는가. 배가 잘 항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팀원들의 유기적인 파트너십이다.
국가대표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해서 뽑혔다는 것 아닌가. 은메달이나 동메달, 또는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국가대표 출신 중에서 차분하고 신중한 이가 해설자로 나서면 어떨까 싶다. 경기를 잘하는 사람과 경기를 잘 설명해주는 사람은 다르게 마련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명선수 중에서 명감독은 안 나온다는 야구계의 속설과 비슷하다. 야구 또한 플레이를 잘하는 것과 팀 전체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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