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괴한 난입하려다 피격 사망
"테러 규정… 대응 테세 격상" 경위 침착 대응 대형 참사 막아
22일 오전 10시 캐나다 수도 오타와 한복판 웰링턴 거리 국회의사당 건물과 주변에서 느닷없이 30여 발의 총성이 울렸다. 검은 옷에 스카프로 얼굴을 두른 마이클 제하프 비보(32)라는 캐나다인이 국립전쟁기념관 앞에서 보초를 서던 네이던 키릴로 상병 등 경비병 3명에 총격을 가한 뒤 인근에 주차된 차를 빼앗아 타고 의사당으로 난입해 총을 난사했다.
캐나다 정부가 이미 위험인물로 분류해 여권을 압수하고 해외여행을 금지시킨 비보의 총기 난동은 10여분이 지나지 않아 끝났다. 의사당으로 돌진하던 비보는 국회 경비대 케빈 빅커스(58) 경위의 응사로 거꾸러져 현장에서 사망했다. 빅커스 경위가 아니었더라면 캐나다 역대 최악의 대형 총기 참사가 발생했을지도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보가 난입할 당시 스티브 하퍼 캐나다 총리가 여당 의원들과 의사당 건물 내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즉각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이날 테러는 정부가 전날 국내 테러 위협 등급을 하위에서 중간 등급으로 상향 조정한 직후 일어났다. 하퍼 총리는 22일 밤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비열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겁먹지 않을 것이며 ‘테러 조직’에 대한 대응 수준을 과거보다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나라에서 만행을 저지르고 우리 영토로 상륙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테러리스트 조직에 맞서기 위해 우방과 협력도 배가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근교에서는 군인 두 명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생 테러분자의 차량 공격을 받아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테러 등급 상향 조정은 이 사건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수도 오타와가, 그것도 캐나다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한 것에 캐나다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이날 사건 직후 의사당 인근 리도 쇼핑센터에서도 총격 사건이 발생했고 비보 이외 추가 혐의자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오타와 일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경찰이 뒤늦게 “쇼핑센터 총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해 집단 테러 우려는 수그러들었지만 23일까지 오타와 시내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사건 당일 경찰은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 요구를 한 뒤 의사당 주변과 오타와 중심가를 봉쇄해 수색을 벌였다. 하퍼 총리의 연설 이후 의회 건물 이외의 봉쇄는 해제했지만 의회는 23일까지 봉쇄되고 일반인 출입이 차단됐다. 이날 토론토에서 열릴 예정이던 명예시민권 수여식 등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관련 행사 두 건도 취소됐다.
캐나다와 국경을 터 놓고 지내는 미국도 이날 내내 초긴장 상태였다. 웰링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의사당을 마주보고 있는 미 대사관은 사건 발생 직후 임시 폐쇄됐다. 미국 워싱턴의 캐나다 대사관도 문을 닫았다. 미 북미항공우주사령부(NORAD)와 연방수사국(FBI)은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23일 오전에는 백악관에서 긴급 안보회의도 소집됐다. 당초 23일 오전 열릴 예정이던 한미 안보연례협의회의(SCM)가 오후로 연기된 것도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이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주요 시설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면서 SCM 취재에 나선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도 미 국방부 건물에 들어갈 때 평소와 달리 여권까지 제시해야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총격 사건 즉시 하퍼 총리와 통화해 캐나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돕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너무나 잔인 무도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면서 캐나다에 대한 미국민의 유대감을 강조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캐나다와 미 보안당국은 이날 총격사건과 이틀 전 몬트리올 근교에서 벌어진 군인에 대한 차량 공격이 우려했던 이슬람국가(IS) 반군 등 테러조직의 계획 범행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그 보다는 과격 이슬람 논리에 빠져 자생적으로 테러에 가담하게 된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캐나다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려다 숨진 비보와 군인을 치고 달아나다 역시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한 마르탱 쿠튀르 루로(25) 모두 사전에 위험인물로 지목돼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인터넷을 통한 접촉 이외에는 외부 이슬람 테러조직과 직접 접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난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루로와 달리 비보는 이슬람 테러조직과 연관성이 바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비보가 캐나다 퀘벡주 라발 출신으로 강도와 마약 투약 등 여러 건의 전과 기록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비보의 본명이 마이클 조지프 홀이었지만 나중에 이름을 바꿨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그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압둘라 제하프-비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보도에 대해 현지 방송은 “비보의 어머니 수전은 연방정부 공무원이며 현재 몬트리올에서 살고 있다”며 “이웃 주민들은 그를 순한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고 이슬람 과격단체와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정부는 10월 중순 이후 국내에서 테러가 잇따르고 있는 점에 주목해 이번 사건이 IS와 연계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캐나다 의회는 지난 7일 IS 공습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 결정에 따라 캐나다 정부는 최대 6개월까지 600여명의 병력과 CF-18 전투기 최대 6대와 C-150 폴라리스 공중급유기 1대, CP-140 오로라 정찰기 2대를 투입할 계획이다. IS가 미국 편에 서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서방국가에 보복 작전을 시작했으며, 그 첫 대상이 캐나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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