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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 뒤덮은 힐링의 섬… 탄소제로 녹색섬으로 업그레이드

입력
2014.10.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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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 그 흔한 오름·언덕 하나 없어 최고 높이 해발 20m

70% 뒤덮은 청보리 매력에 작년 봄 관광객 3만5000명 발길

탄소제로 시험 무대로… 풍력 발전 시운전 끝내고 본격 가동

바람과 파도의 섬 가파도가 탄소제로의 섬으로 변신하고 있다. 섬 주민들에게 필요한 전기는 이제 디젤발전기 대신 풍력발전기로 생산해낸다. 가파도(제주)=정재환기자 jungjh@hk.co.kr
바람과 파도의 섬 가파도가 탄소제로의 섬으로 변신하고 있다. 섬 주민들에게 필요한 전기는 이제 디젤발전기 대신 풍력발전기로 생산해낸다. 가파도(제주)=정재환기자 jungjh@hk.co.kr

국토 최남단 마라도로 가는 길목에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게 떠 있는 작은 섬이 있다. 제주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뱃길로 20여분 달리면 닿는 우리나라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 가파도(加波島)다.

최고 높이 해발 20m에 불과해 멀리서 보면 얇은 종잇장이 떠있는 형상이다. 그 흔한 오름이나 언덕 하나 없이 바다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어 조금만 파도가 일어도 온통 섬이 물보라로 뒤덮일 듯 보이지만 막상 섬 안에 서면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파도가 더해진다’는 이름 그대로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거칠어 제주 본섬과의 소통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 사람들의 손때가 덜 묻은 제주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이 출토됐을 정도로 섬의 내력은 길다. 그러나 섬은 오랜 세월 비어 있었고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때는 18세기 중엽부터다. 1750년(영조 26년) 제주 목사가 조정에 진상하기 위해 소 50마리를 이 섬에 방목하면서 소들을 지키려 40여 가구 주민들의 입도를 허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1,000명에 가까운 주민이 살았지만 지금은 100가구 180명이 거주하고 있다.

가파도는 그간 최남단이란 타이틀이 부여된 마라도의 인기에 가려 덜 알려졌다. 관광객들에겐 그저 마라도로 가는 뱃전에서 잠시 눈으로 흘깃 스쳐 지나가는 작고 ‘외로운 섬’이었다. 그런 가파도가 최근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파도를 바꿔놓은 것은 바로 청보리. 60만㎡(18만평)의 청보리밭은 섬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한다. 해안과 마을 말고는 들판 전체가 청보리밭이다. 청보리밭과 ‘보리밭 사잇길’로 난 올레길(10-1코스)의 운치가 밖으로 알려지며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가파도 청보리축제는 지난 2009년 가파도 방문의 해를 맞아 처음으로 열렸다. 매년 4~5월 열리는 이 축제는 가파도 섬의 역사와 자연, 독특한 생업문화를 연계해 섬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힐링과 사색의 체험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첫해에는 방문객이 5,000여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축제에는 3만5,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았다.

이 곳 청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 재래종으로 다른 지역 일반 보리보다 키가 훨씬 커서 1m를 넘는다. 봄이 되면 섬을 가득 채운 초록빛 보리가 바닷바람에 일제히 넘실대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가파도 주민들에게 보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세찬 바람에 나무 한 그루 변변히 자랄 수 없는 척박한 섬에서 식량과 땔감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냥 파종만 해놓으면 알아서, 바람이 많이 불어도, 물이 좀 부족해도 잘 자라는데다 보릿대도 커서 땔감으로도 제격이었다. 주민들은 반농반어의 삶을 살아가지만 밭일 보단 바닷일이 주업인 까닭에 농사에 공을 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직도 보리를 심는 주된 이유라고 한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m인 국내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 얇은 종잇장이 바다에 떠있는 듯한 형상이다. 제주도 제공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m인 국내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인 가파도. 얇은 종잇장이 바다에 떠있는 듯한 형상이다. 제주도 제공

이 섬은 어디에서든 제주 본섬 조망이 가능하다. 푸른 바다 너머로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 고근산 단산 군산 등 제주의 6개 산을 모두 한 눈에 또렷이 바라볼 수 있다. 제주 본섬이 한 눈에 보이는 이 가파도엔 제주의 꿈이 응축돼 있다.

가파도는 탄소제로를 시험하는 무대가 된다.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자립을 위해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 제주 2030’ 사업의 주인공이다. 탄소제로 섬에 도전하는 이 곳에서 친환경의 미래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가파도 풍력발전은 이달부터 정상 가동, 무공해 전력 생산이 가능해졌다. 2012년 9월 준공된 250kW 풍력발전기 2기와 전력저장장치가 시운전을 마무리했다. 이 풍력발전기에서 나온 전력으로 100가구 180명의 주민들이 전기를 쓸 수 있게 됐다. 그 동안 섬에서 30년 넘게 운영해왔던 150kw급 디젤 발전기 3대는 이제 가동을 멈추게 된다. 2012년 준공해놓고 지금까지 늦어진 이유는 전력저장장치 용량이 당초 설계(2,000kw)에 훨씬 못미치는 850kw급이 설치돼 과부하를 일으켰기 때문. 최근 국비를 투입해 1,860kw급으로 확충해 저장 전기를 24시간 내내 공급하는 전력 안정화 체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가파도 탄소 없는 섬 구축은 풍력과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접목, 주택은 물론 학교와 민박집, 담수화 설비 등 교육 산업 관광 등 모든 분야에 100% 신재생에너지를 공급 탄소 배출을 제로화하고 녹색마을로 만드는데 있다. 현재 가파도에는 37가구에 3㎾급 소규모 태양광 발전기는 물론 섬 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던 승용차 4대도 모두 전기자동차로 교체됐다. 섬 경관을 망치던 전신주 130여개 등도 모두 땅속으로 옮겨졌다. 주민 강신영(58ㆍ여)씨는 “전기 사용료로 월 10만 원을 냈는데 태양광 발전기를 단 후 1만~2만 원으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곧 전화선도 모두 지중화된다. 각 가정은 스마트 미터기와 홈 지능화 기기 등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고 있다. 가파초등학교는 대체에너지를 통한 ‘스마트 스쿨’이 됐다. 진명환(53) 가파리장은 “친환경 녹색 섬으로 변모하면서 오염되지 않은 가파도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잘 보존된 청정 제주의 녹색환경을 선물하면 주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소득창출의 기회가 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가파도를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예술의 섬으로 바꾸는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오는 2017년까지 사업비 114억원 투자된다. 이 프로젝트는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식의 개발을 피하고 우수한 자연환경 등을 활용해 섬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것이 기본 취지다. 이미 개발이 상당부분 이뤄진 다른 섬과 달리 가파도는 인공물이 많지 않은 만큼 지금이라도 친환경적인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섬 곳곳에 있는 공터와 빈집은 원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산책로로 조성될 예정이다. 가파초등학교 인근에는 모임광장, 하늘구름 캠프장, 별 조망시설, 특산품 판매장, 보리 도정공장을 지어 마을중심 공간으로 만든다. 여기에 주민휴게시설, 해녀휴게시설, 주민어업센터 등 주민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선다. 오성률 제주도 디자인정책담당은 “친환경을 표방한 만큼 가파도의 자연 식생을 원래 있던 그대로 최대한 복원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 발전이 가능한 섬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떠났던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싶은 섬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파도(제주)=정재환기자 jung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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