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사랑을 배울 기회

입력
2014.10.22 20:00
0 0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대부분의 선택들은 그것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 채 이뤄진다. 자각을 했던 선택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몇 가지 순간은 있기 마련. 내게 있어 그 중 하나는 친부와 친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순간이다. 친모와 친부는 내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별거를 해왔고, 나는 친모와 친부 둘에게 일정기간 교대로 맡겨졌다. 둘 모두에게 친밀감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둘 모두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그러다 결국 둘은 법적으로 갈라서게 됐고, 내게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친모가 변호사와 통화하며 한 말을 들은 것이 선택을 도왔다. “그러니까 애를 데리고 사는 편이 양육비다 뭐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거죠?” 나를 흥정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느라 집에 없을 때가 많았고, 나는 스스로를 챙기고 돌봐야 했다. 그만큼 스스로를 연민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가족들은 깨가 쏟아지던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어머니가 다 알아서 해주던데, 나는 왜 이리 외롭고 서툴게 혼자 다 알아서 해야 하나. 나이를 먹어가며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실재하는 가족들은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며 악다구니 쓰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간접체험 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방임’이라 느꼈던 것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훈련의 기회였고, 부모의 요구에 짓눌리지 않을 자유와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연민은 치유됐다.

10여 년 전, 아버지는 재혼했다. 새어머니가 생겼다. 과하게 살갑게 굴며 서로의 노력을 과시하는 일은 새어머니도 나도 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말했고, 그래야만 할 순간에 얼굴을 마주했다. 재혼 뒤 2년이 지났을 때,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새어머니는 헌신적으로 아버지 곁을 지켰다. 꼬박꼬박 건강을 위한 식단을 준비하고, 아버지와 함께 자주 산을 오르며 회복을 도왔다. 몸이 아프면 예민해진다. 가끔 예민하게 짜증내는 아버지를 목격했다. 새어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실 것 같아요.” 새어머니는 아니라고 말했다. 자기가 선택한 일이고, 이미 한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 하고 싶다고.

아버지는 완쾌됐고, 나는 아직도 부모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낸다. 부모님은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편이고, 내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않으며, 가끔 내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면 대화를 통해 설득하려 한다.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가까이서 도울 관계라는 것을 안다. 즐거움만 함께 나누고, 아프고 힘들 때 곁에 없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새어머니로부터 그런 책임감을 배웠다. 거리감과 책임감을 기반에 두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작동하는. 너무 뜨겁지 않은, 딱 체온 정도로 미지근한 온도의 사랑을 실감했다.

운이 좋았다. 이 도시에서는 운이 좋아야 사랑을 배울 수 있다. 나는 공교육 과정 동안 스승의 사랑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은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열된 경쟁 시스템은 이해와 존중, 격려와 응원보다 시기와 질투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해지거나, 남을 깎아 내리며 실낱 같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이가 많다. 외로워서 사랑 없는 유희로 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 순간이 지나면 더 외로워진다. 악순환이다. 누군가에게 얻어맞기라도 하고 싶어 패륜적인 농담과 욕지거리를 뱉는 것도 악순환을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사랑을 가르쳐주는 어른이 별로 없다. 사랑하며 살기 어려운 물적 토대와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기왕이면 이런 선택과 다짐이면 좋겠다. 스스로를 가여워하지 않겠다는, (그게 설령 정신승리라도) 긍정의 지점을 찾아내 스스로를 칭찬하겠다는, 그렇게 나를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겠다는, 결국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