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에서 ‘디바’라는 말과 자주 접한다. 과장이 일상화한 ‘언어 인플레이션’ 시대라지만, 듣기 민망할 때가 많다. 타고난 가창력으로 한때나마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중년 이상의 여가수를 가리킬 때는 그런대로 참고 들을 만하다. 그러나 신인가수 딱지를 뗀 지 10년도 안 된 젊은 여가수에게까지 과분한 칭호를 마구 붙이니, 여가수 스스로 오히려 어색하고 부끄러울 정도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이듯, 지나친 미칭(美稱)은 조롱에 가깝다.
▦ ‘디바(Diva)’는 여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왔다. 애초에는 오페라 주역 여가수 가운데 마리아 칼라스나 레나타 테발디처럼 ‘프리마돈나(Prima Donna)’라는 말이 모자랄 ‘세기의 소프라노’를 가리켰다. 그 남성어인 ‘디보(Divo)’가 엔리코 카루소와 베니아미노 질리 이후 ‘사용금지’ 상태인 것만 봐도 얼마나 드물게 쓰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영어에 편입된 이래 영미권 대중문화 발달의 영향으로 점차 뛰어난 여가수와 연극ㆍ영화 주연여우까지 가리키게 됐다.
▦ 그런데 1970ㆍ80년대에 들어본 기억이 없다. 로버타 플랙, 도리스 데이, 실비 바르탕, 올리비아 뉴튼존, 카렌 카펜터, 존 바에즈, 메르세데스 소사 등 10ㆍ20대 청춘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여가수들이 숱했는데도. 그도 그럴 만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거의 쓰이지 않던 이 말은 애니 레녹스가 유리스믹스 해체 뒤 92년에 첫 솔로앨범 ‘디바’를 내면서 되살아났다. 이어 98년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등 5명의 여가수가 함께 펼친 ‘VH1 디바스’ 공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 쓰임새가 세계로 퍼져나갔다.
▦ 애니 레녹스는 영국 가요상을 휩쓴 것은 물론 2009년 11월 노벨평화상 정상회의에서 ‘올해의 평화여성상’까지 받았다. 그처럼 사회활동에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가수에게 요구되는 뛰어난 가창력과 오랜 생명력이라는 두 조건은 갖춰야 디바라고 불릴 만하다. 얼마 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새 앨범 ‘파트너스’를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렸다. 이번이 열 번째라니 55년 데뷔 이래 ‘60년 인기’다. 미 음반산업협회(RIAA) ‘역대 앨범판매 톱10’에 든 유일한 여가수이자, 남녀 통틀어 로크 이외의 장르로도 유일하다. 뮤지컬과 영화 배우로, 또 사회활동가로서도 유명한, 진정한 디바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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