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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내미 유기농 먹이기 쉽지 않더라

입력
2014.10.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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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죽어도 짓지 않을 것이다.’

초ㆍ중학교 철없던 시절 이런 다짐을 한 적이 있다. 학교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종종 들로 끌려(?) 나가서 일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넓지도 않은 땅, 지금 생각하면 자식들 동원하지 않고도 될 일이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일도 해봐야 한다’며 우리 남매를 논밭으로 부렸다.

끊이지 않고 달려드는 벌레들과 뱀이 싫었고, 맨 살을 간질이는 풀잎이 싫었다.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흙이 싫었고 들판의 햇볕이 싫었다. 카뮈 <이방인>의 뫼르쏘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동기가 됐던 태양의 그 뜨거운 맛도 그 논밭에서 일찌감치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일요일에 쉬지 못하는 거였다. 우리 남매는 일(日)요일을 ‘일:요일’이라고 불렀다.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농사는 절대 짓지 않겠노라 같이 다짐했다.

그랬던 내가 농사를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이다. 육아휴직 계획을 세우던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기자, 주말농장 같이 한번 해볼래?” 취재원-기자 관계로 만나 친해진 형이 저녁 자리서 제안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내가 농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설명을 쭈~욱 한번 해야겠군!’ 하고 있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아들 고구마 좋아하지?” “응, 완전 좋아하지.” “100% 유기농으로 한번 지어 보자고, 힘들이지 말고, 심심풀이 정도로 말야. 어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아들은 아빠가 이렇게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기나 할까? 뭐, 알아달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아들은 아빠가 이렇게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기나 할까? 뭐, 알아달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식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이럴 때도 통하는 것인가. 아들을 파는 통에, 뼈에 사무치도록 싫던 농사였지만 즉석에서 농사를 짓기로 했다. “난 진짜 따라만 하면 되는 거지?” 농사 경험이 있다며 그냥 따라만 하라는 그의 이야기에 홀리다시피 해서. 사실 그토록 고구마를 좋아하는 아들 모습이 술잔에 오버랩 되자 따지고 묻고 재고 할 게 없었다.(그 다짐이 이렇게 허물어질 줄이야!) 옆에 있던 후배 놈도 ‘아내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사후 설명, 설득 가능하다며 그 자리서 고구마 농사를 결의했다.

밭 위치는 경기 연천 장남면. 각자 집에서 80㎞ 전후로 떨어져, 주말농장 치고는 꽤 먼 거리였다. 하지만 웬만해선 교통 정체 없는 자유로와 37번 국도를 이용하면 1시간 안에 닿는 곳이라고 했다. 고구마는 감자처럼 퇴비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중간 중간 잡초만 뽑아주면 된다고 했다. 재배 면적은 330㎡ 남짓. 이 보다 넓어지면 힘들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아이들이 고구마를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사 먹여도 되는 고구마였다. 하지만 손수 키운 고구마, 농약 치지 않은 고구마, 정성 듬뿍 아빠표 고구마 등등의 수사로 설레발치며 남자들은 밭으로 향했다. 이북이 고향이라는 마음씨 좋은 조씨 할아버지의 트랙터 도움으로 두둑을 만들고, 검은 비닐을 씌운 뒤 밤ㆍ호박ㆍ황금고구마 순을 심었다. 운 좋게도 적당한 때에 비가 내려줬고, 햇볕도 적당하게 들어 준 덕에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을 갖고 태어난 일꾼들의 고구마는 이럭저럭 영글었다. 지난 주말엔 ‘수확의 기쁨’이라는 것도 맛봤다.

유기농 고구마도 고구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농사를 시작한 동기가 됐다. 어느 부자가 두둑에 앉아 고구마를 캐는 모습. 직접 캔 고구마를 들고 웃는 아이들 모습만 생각하면 내년에도 심어야지 싶지만, 고구마를 캐던 도중에 나온 뱀을 생각하면 깔끔하게 접고 싶은 맘 굴뚝같다.(이것도 트라우마?)
유기농 고구마도 고구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농사를 시작한 동기가 됐다. 어느 부자가 두둑에 앉아 고구마를 캐는 모습. 직접 캔 고구마를 들고 웃는 아이들 모습만 생각하면 내년에도 심어야지 싶지만, 고구마를 캐던 도중에 나온 뱀을 생각하면 깔끔하게 접고 싶은 맘 굴뚝같다.(이것도 트라우마?)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잡초와 씨름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조씨 할아버지는 “뭐 그걸 손으로 뽑고 있어! 그 따위들은 000(농약)을 치면 다 뒈져. 들통(등에 지고 펌프질 하는) 빌려줄 테니 000 쳐!”했고, 모여서 일하기로 한 날 어느 집에서 빠지면 김이 빠졌다. 뽑아도 뽑아도 비웃듯 자라는 이름 모를 잡초(원유헌 선배의 구례일기를 보고나니 그게 ‘바래기’가 아니었던가 싶다)들과 땡볕에서 씨름하자니 소싯적 다짐이 떠올랐다. 그럴 땐 다 때려 치우고 집에 가고 씻고 싶었다. 그래도 흔들리는 아빠들을 다잡은 건 아이들었다.

정말, 거짓말 같이 아들이 맛나게 먹을 걸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고 힘이 났다. 예전엔 이런 말을 들으면 ‘구라를 쳐도 참…’, ‘팔불출 하고는…’ 정도의 반응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이제서야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이 정도 되고 보면 ‘올가닉(organicㆍ유기농) 고구마’가 아니라 ‘올가미 고구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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