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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없이 세상을 보게 될 날, 우리에게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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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없이 세상을 보게 될 날, 우리에게도 올까

입력
2014.10.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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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치욕의 시대를 건너며 재능으로만 세상을 살아야 했던

여성의 불행을 대표한 시인

새들마저 "자본 자본" 우는 시대

신비주의에 취해 가난하게 살다가 정신과 병동 안으로 피난 여행

세상이 멸망한 다음날 아침

문명의 잔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녀는 시와 함께 그곳에 가 있다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가을, 마지막 이벤트”라는 말을 내걸고 추천할 만한 시집들을 묶어 약간 싼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최승자의 시집 3권 ‘쓸쓸해서 머나먼’, ‘이 시대의 사랑’ 그리고 ‘내 무덤 푸르고’를 그 가운데 끼어 넣고 있다. 시를 오래 읽어온 사람들은 이들 시집 위에 걸린 최승자의 이름만 읽고도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 틀림없다. 최승자라는 이름에는 그런 마력이 있다.

최승자 시인
최승자 시인

최승자가 살아온 삶은 시인의 신화 하나를 거의 완벽하게 구성한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문학을 버리고 어학을 전공하라고 강요하는 교수와 싸우고 교실을 뛰쳐나와 출판사의 견습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중퇴 학력으로 인문학 대가들의 글에 붉은 볼펜을 휘둘러 자주 말썽을 일으키다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두 해 사이를 두고 같은 시기에 등단하여 훗날 저마다 한국 시단에 봉우리를 하나씩 이루게 되는 김정환, 이성복, 최승호, 김혜순, 황지우 사이에서 최승자는 자기 내장을 다 드러내는 사람의 선연한 말을 비수처럼 내던져, 한 번 귀 기울인 사람이라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었다. 자신을 배설물로, 잉여물로 규정하는 그에게는 감출 것이 없었다. 그는 번역으로 생계의 수단을 삼았다. 주로 예술가들의 자기 고백에 해당하는 산문들을 직역에 가깝게 옮기면서도 낱말 하나하나에 생기를 주어 독자적인 문체를 확보하였으며, 이 문체로 인간비평이자 문명비평인 반투명 색조의 산문들을 썼다. 그러나 번역은 그를 지치게도 했다.

네 번째 시집 ‘내 무덤 푸르고’(1991)가 준비될 무렵부터 그는 섭생치료에서 점성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비서들을 섭렵하고 거기 심취했다. 이 정신적 여정에 대해 최승자 자신은 “자아를 찾아서”라고 말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더 정확하게 ‘자신의 존재가 잉여물이 아닐 수 있는 세계를 찾아서’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이 정신적 여행에서 그가 무엇을 찾았건 그것은 다시 그를 새로운 암시로 얽매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그는 단칸 셋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그 생활을 내팽개쳐 두는 방식으로 살았다. 버려둘 수는 있지만 벗어버릴 수는 없다. 버려둔 생활보다 더 악착같은 스토커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고난은 이 땅에서, 지금보다 관행은 더 많고 관용은 더 적었던 시대에, 남자들의 사랑과 후원을 얻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재능을 팔아서 살아야 하는 여성의 불행을 대표했다.

다섯 번째 시집 ‘연인’(1999)이 출간될 무렵 최승자는 극심한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타로 카드의 상징체계에 깊이 의지한, 그래서 그만큼 위태로웠던, 이 시집은 그러나 최승자표 시의 가치를 불신하게 하지는 않았다. ‘연인’ 이후 11년 만에 발간한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2010)은 요양원과 세속세계를 오가며 쓴 시들을 한데 묶었고, 그 다음해에 발간된 시집 ‘물 위에 씌어진’은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전부가 정신과 병동에서 씌어진” 시들로 구성되었다. 이 두 시집의 사이에서 최승자는 대산문학상과 지리산문학상을 받았다.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늦게 받은 상이었다.

그러니까 2010년 12월이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뒤풀이를 끝내고 포항으로 다시 내려가는 최승자를 배웅하며, 나는 그 가냘픈 어깨에 얹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허공에 뜬 가랑잎을 쥐는 것만 같아 힘주어 붙잡을 수 없었다. 이 욕망의 거리에서, 아무 것도 쌓아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슬픈 어깨를 얻는다고 해야 할까. 끌어안기조차 어려운 이 어깨,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야 할 어깨가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인으로서 최승자가 겪은 정신적 위기는 그의 개인적 위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시가 멀지 않아 감당해야 할 위기이기도 했다. 중년을 넘긴 사람들에게라면 우리의 삶이 가장 불행했던 시기인 유신시절부터 시를 써온 최승자가 신비세계에 심취했던 것은 군사독재권력이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불행 하나가 숨을 죽인 자리에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승자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내 무덤 푸르고’의 ‘세기말’). 그런데 90년대와 2000년대는? 돌이켜보면 저 공포와 저 치욕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을 가리고 있는 ‘이름 붙일 수 있는 불행’이었을 뿐이었다. 유령의 군대와 싸우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 자신이 벌써 유령이 아닐까.

사실 우리의 삶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뿌리가 뽑혀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뿌리 뽑힌 상태에서 뿌리 뽑힌 제 처지를 의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안은 수시로 찾아온다. 욕망이 이 불안을 가리었다. 살아왔던 길을 모두 폐지하고 널따랗게 새로 뚫린, 뚫렸다기보다 침범해 들어온 큰길을 향해 우리를 너나없이 달려가게 하는 이 욕망은 실상 비어 있는 욕망이지만, 그 비어 있음을 가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욕망이 필요했다. 욕망이 욕망을 물고 온다.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비켜섰을 때에야, 또는 더 이상 그 발걸음을 따라갔을 수 없을 때에야, 문득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유령들과 싸우고 있는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최승자는 예의 ‘내 무덤 푸르고’의 ‘자본족’에서 “새들도 자본 자본 하며 울 날이 오리라”고 벌써 예언했다. 그 날은 재빨리 찾아 왔고, 다른 세계를 여행하던 최승자는 바로 그런 날들의 한복판에서 우리 앞에 한 번 잠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의 여행은 “자본 자본”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 나섰던 일종의 피난 여행이었던 셈이다. 최승자가 이 욕망 시스템에서 비켜 서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 몸집이 작은 시인은 욕망을 재생산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욕망을 바람과 돌에 투사하고, 하늘의 별에 투사하여, 우리의 삶이 어떤 형식으로건 삼라만상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해줄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기미라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는 욕망의 피안을 보여 준 셈이었다.

최승자의 마지막 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과 ‘물 위에 씌어진’에 관해 말한다면, 사람들은 제 욕망을 누르고만 그들 시집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최승자의 낯익은 독기가 확실하게 제거된 이들 시집은 어떤 욕망도 대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은 호흡을 타고, 독립성이 강하고 투명한 말들이 여기 저기 박혀 있어서 일상적인 말도 관념의 표현처럼 보였지만, 최승자가 관념을 나열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에게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구별이 없어진 어떤 체험이 있었다고 오히려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사물들이 본디 모습을 되찾아 의미로 충만한 말들, 이제 더 이상 기호가 아닌 말들이 그 의미와 온전하게 결합하는 자리에 들어서 있었다. 물론 이 본디의 사물들 속에 아파트와 자동차를 비롯하여 이 문명의 무서운 기계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폐허가 되어 무너져가는 모습으로 이따금 시에 나타났다. 그는 마치 이 세계가 멸망한 다음 날 아침 그 문명의 잔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혼란 속에 떠돌고 있던 최승자는 이렇게 자신이 한 번도 누리지 못했거나 오래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 없어져버린 듯한 자리에서 관념이면서 동시에 사물인 것들을 만나고 있었다. 우리가 어느 날 잠 깨어 일어나 이 자본주의의 ‘주어 없는’ 욕망들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아침을 맞게 된다면, 아마 우리도 이 시인처럼 사물을 볼 것이다. 그러나 최승자는 자신의 시상(視像)을 순진하게 이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에게서 구상과 추상의 결합은 하나의 덩어리가 된 시간(또는 무시간)에 대한 인식으로 귀결된다. 오래된 것들과 덜 오래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현재의 공간에서 다시 만난다는 이 생각은 지금 이 시간의 깊이를 말하기보다 아무 것도 해결한 것이 없는 역사의 허무에 대해 더 많이 말한다. 태초에 얼버무렸던 문제들은 지금 또 다시 얼버무려야 할 세계의 문제로 남아 있다. 대안은 역사를 전제로 하는데 역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시인은 이 문명이 멸망한 뒤에나 만나게 될 세계를 ‘멀리 쓸쓸하게’ 바라보면서, 자기 시를 그 세계로 옮겨 놓고 싶어 할 뿐이었다. 최승자는 욕망의 피안에 서 있었다.

마지막 시집 ‘물 위에 씌어진’이 발간된 후, 벌써 3년이 지났으나 최승자는 소식이 없다. 대전 근처의 정신병동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김정환은 마지막 시집의 뒤 표지에 추천의 말을 쓰면서 이런 말로 끝은 맺었다. “...기어코 울음이 터지기 전에, 승자야, 승자야, ‘오늘도 하늘 도서관에서 낡은 책 한 권 빌’리는 것은 얼마든지 좋겠으나 행여 ‘꿈에 꿈에 떠날 일이 있더란다 갓신 고쳐 매고 떠날 일이 있더란다’ 그딴 얘기 다신 말고, ‘그리하여 오늘 오늘 오늘 내가 죽고’ 그딴 생각 정말 말고 들어다오. ‘하룻밤 검은 밤’, ‘죽지 말라고’,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를. 그 목소리가 바로 더 미친 바깥 시인들 목소리고 네 목소리다 승자야, 네 이름이 승자 아니더냐.” 김정환이 여기서 인용하는 구절들은 시 ‘꿈에꿈에’와 시 ‘하룻밤 검은 밤’에 들어 있는 시구들이다. 시인의 이름 ‘승자’는 이기는 자이다. 최승자가 어디에 있건 그는 이기는 자이다. 그는 한 번도 항복한 적이 없다.

고려대 명예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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