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일 에볼라 창궐지역인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등에 보건의료 인력을 보내기로 했다. 20여명의 의료진이 파견될 예정이라고 한다. 전염병 차단을 위한 국제적 공조에 참여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세계적 수준에 오른 국력과 전염병 퇴치의 역사, 전염병의 세계화 등을 감안할 때 이러한 결정이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 올 초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에볼라가 창궐한지 수개월이 지났고, 이미 미국 영국 등 서방 선진국과 중국 일본 등 13개국이 에볼라 발병지역에 물품 지원은 물론 보건인력을 파견해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다.
보건의료 인력 파견을 둘러싸고 의료계에서 정부의 준비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국제사회 요구에 쫓겨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라도 능동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제는 소국(小國)주의 내지 선진국 추종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적 책임과 연대 움직임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할 때가 됐다.
알려진 대로 에볼라에 대응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다. 격리와 방역, 이른바 보존적 치료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에볼라 전문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진국들이 저마다 보건의료 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것은 인도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전염병 역시 세계화한 국제 환경에 선제 대응한 면이 적지 않다. 우리로서도 2000년대 초 중국이 잘못된 정부대응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입을 완벽하게 차단한 방역체계를 전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종 괴질의 방역과 치료 경험을 축적할 기회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국제기구나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여러 경제적, 보건의료적 호의를 감안하더라도 커진 국력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할 의무가 있다. 구한말 콜레라 창궐로 서울에서만 하루 300명 이상씩 사망했을 때 근대 의료기술로 퇴치에 나섰던 서양 선교 의료진의 헌신이 있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제사정과 안보상황을 보더라도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일이다. 선진국들이 수억, 수천만 달러를 에볼라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에 지원할 때 우리는 겨우 60만달러를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에 보냈고, 지난번 유엔 총회 때 500만달러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 일본만 해도 4,000만달러 이상을 냈다. 생색만 내는 수준으로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호소나 미국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우리 스스로 국제적 위상을 관리해야 한다.
물론 통제가 되지 않는 전염병 퇴치에 나서는 만큼 의료계의 안전 우려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자국 의료인력이 감염된 미국 사례에서 보듯이 국내에서는 충격파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내달 하순 보건의료 인력의 파견이 있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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