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테크노밸리의 직장인들은 한두 다리 건너면 대부분 서로를 알아요. 사고 소식을 듣고 주말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죠.”
20일 이른 아침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인근 판교역엔 굵은 빗방울이 내렸다. 월요일 이맘때면 으레 판교역 부근은 젊은 직장인들로 활기가 넘친다. 평소에는 직장 동료들과 역에서 사무실까지 함께 걸으며 주말 동안 밀렸던 얘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이날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굳은 얼굴로 우산을 푹 눌러쓴 채 발 밑만 보고 걸었다. 동료들을 만나도 가벼운 눈인사만 나누곤 서로 말 없이 바삐 발걸음만 옮겼다.
유스페이스2 A동 앞은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가 언제 일어났느냐는 듯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군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국화 화분 2개만이 빗속을 지키며 참혹했던 사고 현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출근을 서둘러야 할 오전 9시쯤 한 30대 남성이 사고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인근의 한 벤처기업에 다닌다는 이 남성은 “이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사고를 당했다. 주말에 빈소를 다녀왔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마음속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먼발치에서 사고 현장을 보고 있던 최모(27ㆍ여)씨는 “사고 피해자 가운데 직접 아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곳에서 근무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면서 “빈소는 못 가보더라도 사고 현장에서 애도를 하려고 왔는데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어 멀리서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희생된 방모(34)씨가 다니던 직장 동료들은 출근 직후 텅 비어있는 방씨의 책상을 보며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방씨의 개인 비품들은 유가족에게 전달됐고, 서류 뭉치만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3년 전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방씨는 유쾌한 성격 탓에 이 회사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홍모(36) 연구원은 “항상 주위를 즐겁게 했던 방씨가 사고를 당해 회사 전체가 애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부 회사에선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동료나 지인의 발인을 지켜보기 위해 빈소로 향하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인근 상인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스페이스 상가 입주자 이모(47ㆍ여)씨는 “사고 때문에 계속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침부터 굳은 얼굴로 출근하는 직원들 표정을 보니 더 가슴이 아팠다”며 “정부나 정치권은 사고가 터진 뒤에 안전을 떠들지 말고 다시는 이 같은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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