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이혼, 재혼에 대한 혁명적인 입장 변화를 예고했던 세계주교대의원대회(주교 시노드) 보고서에서 결국 관련 문구가 삭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두로 한 개혁 시도는 보수파에 밀려 수포로 돌아갔지만 동성애를 놓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평가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19일 주교 시노드의 최종보고서 작성을 위한 투표에서 찬성 118명, 반대 62명으로 동성애를 환대한다는 내용이 보고서에서 빠졌다고 보도했다. 최종보고서에 채택되려면 참석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혼하거나 재혼한 신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다는 문구도 보고서에서 제외됐다.
최종보고서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데는 가톨릭 내 진보와 보수의 깊은 갈등의 골이 작용했다고 AF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전했다.
앞서 13일 공개된 중간보고서에선 가톨릭 교회가 동성애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 이혼한 사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보수파가 거세게 반발했다. 가톨릭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간주하고 교회의 절차에 따른 이혼만 인정하는 등 가족문제에 대해 엄격한 교리를 적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론 실패였지만 가족문제를 둘러싼 지난 2주간의 토론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가톨릭 동성애인권단체인 ‘뉴웨이즈 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는 “최종보고서에서 동성애 환대 문구가 빠진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지만 교회가 이 문제를 열린 자세로 토론한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BBC도 비록 최종보고서의 채택 요건인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벽은 넘지 못했지만 절반이 넘는 참석자가 가톨릭 교회의 개혁 시도에 찬성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AP통신은 일부 진보 성향 주교들이 동성애 포용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중간보고서와 같이 교회가 더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반대표를 던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중간보고서에는 “동성애자도 은사(恩賜·gift)가 있고 이를 가톨릭 교회에도 제공할 수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이 실렸다. 이에 보수 성향 주교들이 반발하자 시노드는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사려 깊게 대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톤을 낮췄지만 이마저도 최종보고서에는 실리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시노드 특별회의 종료 미사에서 “신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가슴을 열게 해 준다”며 “기독교인들은 용기를 갖고 많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교황은 앞서 18일 시노드 마지막 날 회의 연설에서 “이번 회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교회의 분열이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상상한다”면서 단합을 촉구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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