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책위원회 의장이 어제 지난달 말 합의했던 세월호특별법, 정부조직법과 일명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처리 문제를 협의했다. 여야 원내대표가 이른바 세월호 참사 관련 3법을 동시 처리하자고 합의한 게 지난달 30일인데, 20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본격 협상에 들어간다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이번 여야 협의도 일요일인 어제 서둘러 연 것을 보면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참사에 따른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정치권에 쏟아질 것을 의식한 게 분명하다.
정치권의 무책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어떤 대형 사고도 국민의 대의기관에 교훈이나 각성제가 되지 못하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만 해도 세상을 뒤집어놓을 듯이 난리를 치더니, 실없는 신경전과 정치공방으로 세월호법 처리 합의에만 6개월이 넘겨 걸렸다. 그 엄청난 참사를 겪고도 여전히 사회와 국민의 안전의식이 무디기만 한 것이 정치권의 이런 무책임ㆍ무사안일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30일 극적으로 이뤄진 여야의 세월호 관련 3법 처리 합의는 사실 큰 골격에 불과하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여야가 특별검사 후보 4인을 추천하되, 유족의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하고, 세월호특별법과 함께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유병언법’을 10월 말까지 동시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최종 합의 처리까지는 걸림돌이 될 만한 세부 쟁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법만 해도 여야 논란이 예고된 특검 후보 추천 과정의 유족 참여 여부는 물론이고, 진상조사위원 구성과 위원장 선임 문제, 진상조사위와 특검의 효율적 연계방안, 희생자 보상문제 등 진통을 빚을 만한 쟁점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또한 야당이 독자적 안을 내놓는 등 난항이 예고됐다. 국가안전처 신설과 해경 해체 여부를 놓고서는 여야에 덧붙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여야가 진작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어도 월말 처리 시한을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 시한을 10일 앞둔 이제서야 여야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본격 협상에 들어가겠다니, 조기 성과는 난망이다.
여야 합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 그런데도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나 약속이행이 늦어지는 데 대한 초조함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합의인데도 이 모양이니 어렵게 작성된 여야 원내대표 지난달 합의각서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그래 놓고도 일이 잘못 되면 ‘남 탓’ 타령이나 하며 변명으로 무책임을 덮으려 할 게 뻔하다. 정치가 나라를 결딴내고 나서야 정신 차릴 게 아니라면, 이번에야말로 여야가 합의를 지키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공연장 참사는 정치권에 거듭 대오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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