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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입시정책 연구 전담하는 독립기구 신설해야"

입력
2014.10.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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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뀔 때마다 온갖 개선안, 수능체제 20년간 16번 바뀌어

"중요한 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 전문가들이 장기 정책 수립해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뜯어고쳐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지난해 11월 서울 풍문여고에서 치러진 수능에서 시험감독관이 수험생들의 수험표를 대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뜯어고쳐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지난해 11월 서울 풍문여고에서 치러진 수능에서 시험감독관이 수험생들의 수험표를 대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대학입시와 교육과정을 확 뜯어고치겠다며 온갖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정착된 것은 거의 없다. 1994년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20년간 16번이나 수술대에 올랐으나 공교육 정상화란 애초의 목표는 멀어졌고, 사교육비 부담과 스펙쌓기 경쟁만 심해졌다. 고교평준화 체제도 사실상 붕괴돼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일반고로 서열화됐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과정ㆍ입시제도의 잦은 개편이 불러온 혼란은 학생ㆍ학부모ㆍ학교가 떠안았다”며 “정부는 매번 교육정책을 뜯어고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년간 16번 바뀐 수능

교육부는 지난달 통합사회ㆍ과학 과목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했다. 계열별 장벽을 없애 융합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내년 9월 교육과정을 최종 확정ㆍ고시해 초등 1~2학년은 2017학년도부터, 나머지는 2018학년도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과정 개편이 입시와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정작 새 교육과정을 수능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아 논란을 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육과정 개편이 매번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정권의 이해에 따라 또 다시 졸속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 없는 개정안을 내놓고, 부작용ㆍ폐단이 나타나면 그때 또 다른 개선안을 마련하는 과정은 수능이 도입된 20년간 16차례 반복됐다.

2002학년도 대입에서 정부는 무시험 전형을 확대, 특별전형 다양화를 꾀했다. 소질과 학업잠재력 등이 중시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무조건 한 분야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주요 대학들은 정부의 대학별 지필고사 금지 방침까지 어기며 사실상 본고사를 시행했고, 대입 개선안은 물거품이 됐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커지자 2005학년도 입시부터는 선택형 수능이 도입됐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언어ㆍ수리ㆍ외국어영역 중 2과목을, 사회ㆍ과학ㆍ직업탐구 중 1과목을 선택해 수능을 보는 ‘2+1 전형’을 권고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언어ㆍ수리ㆍ외국어영역을 모두 택하고, 사회ㆍ과학ㆍ직업탐구 중 1과목을 고르는 ‘3+1’ 전형을 채택했다. 학생들의 입시부담은 줄지 않았고, 사교육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단순 성적보다 학업 역량과 전공 적합성 등을 따져 신입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는 2010학년도 대입 전형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불명확한 합격 기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기소개서 대필, 사교육 성행 등으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비상교육 이치우 입시전략연구실장은 “대입제도가 워낙 자주 변하니까 바뀐 교육 정책을 따라 잡느라 사교육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졌다”고 말했다.

학벌 개혁이 공교육 정상화 핵심

거듭된 교육과정ㆍ대입제도 개편 피로감에 일부에서는 “학력고사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 점수대로 대학에 들어가는 게 제일 공평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은 “사교육의 영향력이 가장 극대화되는 무대가 바로 간단한 점수 경쟁 구조”라며 “영어ㆍ수학 사교육에서부터 계층간 격차가 크기 때문에 공평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입에서 기회형평성 전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영철 연구위원은 ‘대학 진학 격차의 확대와 기회형평성 제고방안’ 보고서에서 “지역ㆍ계층 간 대학 진학 격차가 커질수록 국가 전체의 인재양성 시스템의 효율성은 훼손된다”며 사회배려전형 확대를 주장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국립대부터라도 지역균형선발과 같은 기회형평성 전형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진로맞춤형 입시제도를 도입하거나 논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수능을 총괄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각 대학 대신 논술 문제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선회 중부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학술지 ‘교육문제연구’에 발표한 ‘대입제도 개선정책의 정책인과가설 분석’ 논문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현행 대학별 논술은 고교에서 준비하기 어려워 사교육 의존 경향이 큰 만큼 학교 교과 중심으로 출제하는 평가원 주관의 공동논술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서열화가 고착화돼 몇 가지 대입제도 개편만으론 공교육 정상화를 이룰 수 없다. 개선의 핵심은 학벌 개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국ㆍ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 방안이다. 독일, 프랑스처럼 전국 국ㆍ공립대를 하나로 묶어 신입생 선발과 학위 수여를 공동으로 하는 방식이다. 수능은 대입자격시험으로 바뀌고, 시험을 통과한 수험생은 1~3지망을 써내 입학 대학을 배정받는다. 의대 법대 약대 등 전문대학은 대학원 과정에 편성하고,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전문대학 설립인가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사립대의 참여를 유도한다.

입시위주 교육을 개선해 고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지역 균형발전 등을 이끌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라며 “통합네트워크 방안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졸속 교육정책 방지 위한 독립기구 고려해야

결국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과정ㆍ대입제도 개선은 제도 시행 이전에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대학 신입생 수가 2012년 72만명을 정점으로 2030년 46만명, 2060년 30만명 수준으로 감소하는 추세여서 그간의 교육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정권에 따라 영향 받지 않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김경범 교수는 “교육정책은 최소 1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 산하 독립기구인 교육백년대계위원회(가칭)를 신설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교육 전문가들이 미래 교육 정책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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