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사위 살던 장위동 부마가옥서 2년째 마을 주민 모여 재연 행사
올핸 형편 어려운 부부 실제 결혼식..."지역 축제로 재개발 갈등 치유되길"
“훠어이~ 썩 물렀거라, 우리 예~쁜 공주님 행차시다. 훠어이~ 너도 뒤로 물렀거라, 늠름하신 부마님 납신다…”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부마가옥(김진흥家) 앞 마당에서는 문무백관 및 상궁들이 도열 한 가운데 궁중 혼례가 재연되고 있었다. 분위기를 돋우는 풍물패 대장의 구성진 소리와 흥겨운 사물놀이 장단에 구경꾼들도 어깨를 들썩였다. 이윽고 공주와 부마가 초례상으로 천천히 나섰고 전안례(奠雁禮)와 교배례(交拜禮), 예필철상(禮畢綴床) 등 절차가 궁중 법도에 맞춰 진행됐다.
서울특별시민속자료 제25호인 부마가옥은 조선 후기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남편인 부마 윤의선과 그의 양자가 살던 곳이다. 성북구는 이를 알리고자 2012년부터 마을 축제인 ‘부마 축제’를 열고, 축제 기간 중 마을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궁중혼례를 재연하고 있다.
이날 궁중 혼례의 공주와 부마에는 조금 특별한 남녀가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장위동 주민이자 실제 부부인 이정희(24)씨와 석혜진(22)씨다. 이미 두 자녀를 둔 부부는 형편이 어려워 정식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채 5년째 함께 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혼인신고를 한 ‘결혼 기념일’인데다 석씨는 셋째를 임신한 상태여서 의미를 더했다. 지난해 궁중 혼례식을 지켜 보던 이씨가 ‘늦게 나마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주민 센터에 신청서를 냈고, 행사 추진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이씨는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혼례를 치르게 돼 기쁘다”고 했다. 석씨는 “얼떨떨하지만 기분이 정말 좋다”고 했다.
상궁, 초롱동이, 기러기 아범, 함진아비, 가마꾼 등 혼례 도우미로 나선 74명도 모두 마을 주민들이 자원 봉사자로 나섰다. 특히 이날은 구경꾼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폐백 절을 받고, 손에 들고 있던 밤과 대추를 던지며 덕담을 건넸다. 혼례 잔치 음식 역시 인근 주민 50여명이 팔을 걷고 나섰다.
이씨의 어머니 안선옥(46)씨는 “앞으로는 이웃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장위동은 재정비 사업으로 인한 대표적인 주민 갈등지역이다. 주택재개발 정비 사업이 15개 구역에서 진행 중인데, 면적은 무려 187만3,000여㎡에 달한다. 또 각 구역마다 정비업체 선정 갈등, 운영자금 부족, 부동산 감정평가 불만, 내부 의견 충돌 등으로 의사 결정이 보류되거나 지연되고 각종 소송이 제기되는 등 갈등이 심각하다. 이날 장위동 곳곳에도 재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성북구는 이번 축제를 통해 갈라진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라고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장기간 표류하는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경제 손실도 문제지만 주민 간 오해와 불신이 더 큰 문제”라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이번 축제가 갈등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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