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돌프 칼데콧 지음ㆍ이종욱 옮김
아일랜드 발행ㆍ528쪽ㆍ4만8,000원
전미도서관협회가 매년 빼어난 그림책을 선정해 주는 칼데콧상은 랜돌프 칼데콧(1846~1886)의 업적을 기려 제정됐다. 삽화가 있는 책을 넘어 글과 그림이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대 그림책은 칼데콧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자리잡았다. 한 쪽에 1~4줄의 문장만 넣고 글이 남긴 부분을 그림이 이야기해주거나, 글 없이 그림만 여러 쪽 이어지는 방식은 그가 고안한 것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등 걸작 그림책으로 잘 알려진 작가 모리스 센닥은 이렇게 말한다. “칼데콧의 작품은 현대 그림책의 출발을 뜻한다.”
칼데콧이 남긴 그림책 전부를 한 권에 담은 ‘칼데콧 컬렉션’이 나왔다. 한국에서 칼데콧은 칼데콧상만 유명했지 정작 그의 작품은 두세 권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반갑다.
칼데콧은 영국인이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기 영국은 출판 부흥기를 맞아 어린이책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때 그림책도 큰 변화를 겪는데, 칼데콧이 그 전환점이다.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맞춰 두 권씩, 총 18편의 이야기를 16권의 그림책으로 펴냈다. 이 책들은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베아트릭스 포터, 모리스 센닥 등 뛰어난 그림책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칼데콧 그림책은 어린이만 보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 더 좋아할 만하다. 삶에 대한 긍정과 생명에 대한 사랑, 상류층의 허영과 욕심, 사회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가 거기에 있다. 당대 문호의 시와 그림, 영국의 전래 동요, 발라드 등 다양한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면서 영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소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보통사람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칼데콧의 그림은 극도로 절제된 선과 여백의 활용, 적확한 묘사가 특징이다. 우아한 채색화와 세피아톤의 섬세한 펜화가 대비를 이루면서 어우러진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림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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