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째 주 주말에 딸이 장난감에 코가 찢겨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한 달 전 감기가 심해져 열이 올라 폐렴으로 번져 응급실 신세를 진 녀석을 다시 업고 응급실에 들어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요일 저녁. 응급실은 북새통이었다. 간신히 접수를 마친 뒤, 우는 아이를 업고 성형외과 레지던트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막장’ 언니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가만히 있어. 너희들이 뭔데 나를 막 대해. 나 등에 철심 박은 사람이야. 너희들 다 죽었어!” 하필 우리 앞에서 소리를 지를 것이 뭐람. 화들짝 놀란 딸이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가 우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언니는 소리를 지른다. 아픈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다. 힘이 넘쳐난다. 보호자라고 따라온 이십 대 남자. 애인 사이란다. 겨우 안정을 찾은 언니는 침대에서 계속 진료를 거부한다. 애인은 계속 내 옆에서 전화질을 한다.
“임신한 여자가 왜 술을 먹고 자살을 하려는지. 제 정신이 아니다. 옥상에서 투신하려는 것을 겨우 데리고 왔어.” 소리소리 지르는 언니에게 딸이 쪼르르 걸어간다. 뒤뚱뒤뚱 걸어가더니 소리 지르는 언니를 쳐다본다. 소리를 지르던 언니가 잠시 멈춘다. 잠시 조용했던 언니는 다시 소리를 지른다.
“나는 돈도 없고, 저 사람은 보호자도 아니야. 나 집에 갈 거야.” 딸을 치료할 성형외과 레지던트는 오지 않고 언니는 소리를 질러댄다. 옆 침상에는 등산 후 음주하다 쓰러진 아저씨가 인공호흡을 하고 있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의사들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허겁지겁 내려온 레지던트는 수술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했다. 수면제를 맞고 겨우 잠이 든 아이. 레지던트는 일곱 바늘을 꿰맸다. 치료가 끝나자 그는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5분 정도 걸은 후 귀가하라 한다. 잠잘 시간에 수면제를 먹은 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으려 한다. 발 마사지를 하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들려 주고… 잠에 취해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돌아다니며 잠을 깨웠다. 비틀비틀 겨우 걷는 아이. 의사는 더 있으라 하고 간호사는 가도 된다고 한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그 사이에도 환자들은 계속 들어온다. 병원 약국에서 약을 타려고 하는데 막장 언니 보호자가 약을 타고 있었다.
“아이 앞에서 너무 시끄럽게 하고 난리를 쳐서 죄송합니다.” 언니의 남자가 말을 건넨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응, 나야. 겨우 진정시켰다. 아이를 없애겠다고 하는데 큰일이다. 저러다가 아이도 산모도 죽겠다. 뭐? 왜 임신시켰냐고? 나도 몰랐다. 임신사실을 말하지 않았는데 어쩌란 말이야.”
전화하며 성급히 응급실을 빠져 나가는 젊은이. 아마, 막장 언니가 아이를 낳고 함께 아이를 양육한다면 나처럼 아이 때문에 응급실 신세를 질 일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능할까. 택시를 타자 딸아이가 히죽 웃는다. 지옥에서 탈출해 집에 가는 줄 아는가 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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