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진료기록 없으면 증명 어려워
A씨는 계약직으로 1년 근무하면 대다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사업주의 말을 듣고 2011년 B물품배송업체에 입사해 주 52시간을 일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정규직 전환을 차일피일 미뤘고, 과도한 업무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A씨는 입사 후 만 2년이 된 2013년 2월 회사와의 면접에서 “정직원이 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사망 전 불안 증세를 보였고, A씨의 부인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처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정신과 진료 기록이 없는데다,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중소기업중앙회 간부들로부터 수 차례 성추행을 당하다 자살한 비정규직 연구원 사례처럼 최근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린 근로자들의 자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경우는 4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석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연도별 자살사고에 대한 산재보험 승인건수’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자살 근로자의 산재 승인률은 2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산재급여 승인률 89.7%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연도별 자살 근로자의 산재승인은 2011년 44건 신청 중 12건(27%), 2011년 48건 중 11건(23%), 2012년 49건 중 16건(32%) 올해 24건 중 5건(21%)에 불과해 전체 산재 승인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흐름과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자살 근로자의 산재 승인률이 낮은 이유는 까다로운 기준 때문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요양 중인 사람, 업무상 사유로 정신 이상상태에 이르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며 “사실상 자살 전 정신과진료 기록이 있고, 이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임을 증명해야 산재 승인이 가능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신과 진료나 요양 기록 없이 산재를 승인 받은 자살 근로자는 지난 4년간 19명에 불과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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