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은 지난해 11월 치러진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수험생들이 낸 소송에서 오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이 문항으로 인해 대학에서 탈락한 수험생들이 불합격 취소 소송을 내고 결과에 따라 해당 대학은 승소한 수험생들에 대해 일일이 사정을 다시 하는 등 큰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제 오류 지적을 묵살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수능을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교육부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재판부는 “수능의 특성상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정답으로 택해야 한다”며 “정답으로 예정된 답안이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객관적 사실 즉 진실이 담긴 답안도 함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이 된 문항은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에 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고르라는 문제다. 평가원은 EU가 NAFTA보다 총생산액의 규모가 크다는 보기를 정답으로 정했다. 교과서에 실린 2009년 통계치를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수험생들과 전문가들은 2010년부터 상황이 역전돼 현재까지 NAFTA가 EU보다 총생산액이 더 크다며 출제 오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가원은 “객관식 문제에서는 최선의 답을 고르는 게 합리적”이라는 핑계를 앞세워 성적표 배부를 강행했다.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과 언론 등에서는 모든 대학입시가 완료된 뒤 소송에서 오류 결정이 나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지만 교육당국은 끝내 고집을 부렸다. 뻔히 오류인줄 알면서도 당장의 혼란을 피하려다 결국 더 큰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지리를 선택한 수험생은 2만8,000여명이다. 해당 문항은 배점이 3점짜리로 정답여부에 따라 등급이 바뀔 수 있었다. 교육당국의 무책임한 처사로 피해를 본 수험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평가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상고를 통해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뻔뻔스럽다. 평가원은 소송 과정에서 변호인으로 정부 공인 법무공단이 아닌 민간 대형로펌의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출제 오류 피해자인 수험생들을 상대로 국민 혈세를 낭비하면서까지 과도하게 소송을 진행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소송 취하와 함께 향후 대책을 궁리해야 한다. 수능에서 출제 오류가 인정된 경우는 이번이 4번째다. 65만명이 치르는 국가고시인 수능에서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큰 문제다. 교육부는 수능시험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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