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공사(KIC)가 설립된 건 2005년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된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에 따라 2003년 제정된 한국투자공사법이 설치 근거가 됐다. 그 이전부터 국내 금융권과 경제관료들 사이에선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름잡는 JP모건 같은 투자은행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민간 투자은행을 육성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싱가로프 국영투자회사인 ‘테마섹홀딩스’ 등을 모델 삼아 100% 정부가 출자한 일종의 국부펀드로 출범한 셈이다.
▦ 200억달러 규모의 KIC 투자자금은 한국은행 보유 외환을 주로 활용하고 공공기금도 끌어다 쓰기로 돼 있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외환보유액을 사실상 창고에 쌓아두기 보다는, 일부를 좀 더 적극적인 투자에 활용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보유 외환은 위기대비용인만큼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운용되는 게 마땅하다며 저항했다. 하지만 두 기관 간 힘겨루기는 결국 재경부의 승리로 돌아갔고, KIC에도 한은 보유 외환의 일부가 들어갔다.
▦ 인상적인 투자 성공에 목말랐던 KIC는 2008년 1월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미국 메릴린치에 20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2조원)를 투자했다가 오히려 약 1조원이나 국고를 날리는 투자 참사를 기록한다. 당시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모기지 투자 실패 등으로 주당 90달러 수준이던 주가가 50달러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낙관한 싱가포르 테마섹이 5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국제적인 모험투자 모멘텀이 형성됐고, 그 바람을 타고 KIC도 투자를 감행했다가 메릴린치가 끝내 무너지면서 실패한 것이다.
▦ 문제는 최근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당시 투자결정 과정의 미스터리다. 투자결정을 위한 KIC 운영위원회가 열린 건 1월 14일 밤11시. 새벽1시를 넘겨 진행된 회의 중 운영위원들 다수가 투자 반대의견을 냈지만, 재경부 측 요청으로 15분 정회 후 갑자기 만장일치 찬성으로 돌아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2008년 국정감사 등에서 1차로 짚어졌던 이 문제가 새삼 재론되면서 투자결정 과정에 당시 대통령 일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나와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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