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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냅킨' 없었다면, 바르샤의 메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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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냅킨' 없었다면, 바르샤의 메시도 없었다

입력
2014.10.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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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아버지와 대서양 건넌 메시...작은 키·호르몬 치료로 입단 난망

참다못한 아버지, 식당서 최후 통첩...놀란 구단측 냅킨에 즉석 계약서

현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27ㆍ아르헨티나)의 축구 역사는 ‘냅킨’ 한 장에서 시작됐다.

올해는 메시가 FC바르셀로나를 통해 데뷔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5일 메시가 처음 바르셀로나와 계약할 때 냅킨에 계약서를 작성한 후일담을 보도했다. 2000년 9월 17일 열세 살의 메시는 아르헨티나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당시 메시의 키는 5피트(152.4cm)가 채 안됐다. 호셉 밍구엘라 바르셀로나 기술 감독은 구단측에 메시가 ‘축구의 신’으로 일컬어지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같다고 말했다. 밍구엘라는 1982년 마라도나를 바르셀로나로 영입한 주인공이었다.

당시 카를로스 렉사흐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가 있었고 메시는 렉사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10월 초 메시의 평가전이 잡혔고 렉사흐는 그 자리에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7~8분만에 마음을 정했다 “이 꼬마와 계약해야 한다”고.

하지만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당시 구단은 13세 소년과 계약해본 적이 없었다. 메시가 외국인이라서 유소년 팀에서 경기할 수 없었고 오직 카탈루냐(스페인 북동부지방)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다. 구단은 메시의 키를 크게 할 호르몬 치료 비용까지 대야 했다. 한 달에 1,000달러(106만900원)가 넘는 비용이다.

두 달이 넘게 기다리기만 한 채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한 메시의 아버지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다른 클럽들도 메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 12월 14일 메시의 아버지는 인근 레스토랑에서 렉사흐를 만나“이제 그만 다른 곳을 알아보겠다”고 최후통첩을 선언했다. 렉사흐는 황급히 종업원에게 냅킨을 달라고 부른 뒤 계약서를 휘갈겼다. 렉사흐는“나, 카를레스 렉사흐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는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고 플레이어 리오넬 메시와 서로 합의된 금액 하에 계약한다”고 썼다. 냅킨은 2010년 12월 메시와 바르셀로나의 계약 10주년을 맞아 처음 공개됐다.

4년 뒤 2004년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시즌 데뷔를 한 메시는 프리메라리가 최연소 선수가 됐고 그 해 FC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컵을 높이 들어올렸다. 메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4년 연속 득점왕, 단일 시즌 최다골, FIFA 발롱도르 4년 연속 수상 등 축구선수로 세울 수 있는 기록을 줄 세우며 ‘메시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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