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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를 꿈꿨던 또 하나의 동학...100년 만에 베일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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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를 꿈꿨던 또 하나의 동학...100년 만에 베일 벗다

입력
2014.10.1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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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가 망각한 상주동학

경북 상주 산골서 경전간행사업 주력...일제감시 피해 민족종교 맥 이으려 분투

1943년 대대적 탄압으로 교세 위축

우리나라 유일 동학유물 寶庫

지난해 말 289종 1400여점 '국가지정 기록물 제9호'로 지정

동학혁명 120년 맞아 동학史 보완해야

서슬 퍼랬던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동학 유물 1,400여점을 온전히 보관해 온 경북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 산중에 자리한 상주동학교당의 가을야경이 은행나무 그림자와 어우러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상주시청제공
서슬 퍼랬던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동학 유물 1,400여점을 온전히 보관해 온 경북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 산중에 자리한 상주동학교당의 가을야경이 은행나무 그림자와 어우러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상주시청제공

‘상주동학’을 아시나요.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지만, 우리들 기억 속에 상주동학은 낯설기만 합니다. 우리 역사가 상주동학을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역사는 경중을 따져 기록되고,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반영된 결과물인지라 빠져 있거나 누락된 역사가 허다한 것도 역사가 가진 한계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네 역사가 잘 알다시피 중앙 중심, 지배자 중심의 산물인 것도 우리가 상주동학을 기억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보는 상주동학을 ‘변경(邊境·frontier)의 동학’이라 명명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학이 ‘중심(core)의 동학’이라면, 상주동학은 이것과 교집합도, 합집합도 못 이루는 ‘천애고아’로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사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주동학은 변경의 동학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럼 중심의 동학과 변경의 동학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걸까요. 그럼에도 두 동학이 어떻게 동류항이 될 수 있는 걸까요. 먼저 중심의 동학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최근 발언이 그 핵심을 잘 말해줍니다. 정 총리는 지난 11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식에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일제의 침략 야욕에 맞서 우리의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동학농민군의 굳건한 의지는 그 이후 계속된 의병항쟁과 3·1 독립운동,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토대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공인하는 동학은 창시자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과 그를 이은 2대 교주 혜월 최시형(1827~1898),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1855~1895) 그리고 3대 교주이자 천도교의 교조로 거국적인 3·1 독립운동을 지휘한 의암 손병희(1861~1922)의 그것입니다.

정 총리의 발언을 토대로 시기별로 나눠보면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일제의 침략 야욕에 맞선’ 동학은 전봉준과 최시형을 위시한 동학도를 가리킵니다. ‘계속된 의병항쟁과 3·1 독립운동,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토대가 된’ 동학은 손병희와 함께한 동학도를 의미합니다.

상주동학은 이 노선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동학입니다. 시기로는 일제강점기 서울에 손병희와 그 동지들이 있었다면, 경북 상주에는 삼풍 김주희(1860~1944)와 그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가 기억하는 동학은 국가와 백성이 위태로울 때마다 온몸을 던져 구국(救國)·구민(救民)한 우리네 민초의 내력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주동학은 온몸으로 맞서기보다 사방이 재(岾)로 둘러싸여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제격인 곳에 터를 잡고 적서차별, 인본사상, 인간존중을 기치로 한 동학 정신을 대대손손 전하기 위해 경전간행사업에 주력한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던 또 하나의 동학’입니다.

이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1864년 프로이센과 영토문제로 총부리를 겨누며 뜨겁게 맞붙었다가 전국토가 초토화된 덴마크의 국가부흥운동 성공사례를 연상케 합니다. 덴마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공병장교 출신의 엘리코 달가스였습니다. 그는 박살난 국토를 누비며 “황무지 유틀란드 반도의 모래 언덕을 장미꽃 향기가 가득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자”며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다독였습니다. 달가스가 동분서주할 때 농민교육자 니콜라이 그룬트비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자”며 대국민 정신교육을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덴마크는 일어섰고 달가스는 국민 영웅으로, 그룬트비는 국부(國父)로 칭송받았습니다. 이 사례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농업 과외 선생이었던 류달영 박사는 덴마크 사례를 들어 ‘새마을운동이 성공하려면 공직자들의 현장주의와 농민들의 정신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찬가지로 손병희와 그 휘하가 현장주의를 추구했다면, 김주희와 그 휘하는 정신교육에 매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병희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29명과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김주희는 1943년 11월 25일 경전간행사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붙잡혀 역시 옥살이를 합니다. 똑같이 동학의 사상 틀로 움직인 결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상주동학은 여전히 변경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해 말 상주동학교당이 100년 동안 보존하고 있던 동학경전 발간물과 목판 등 289종 1,425점의 유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 기록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미는 간단치 않습니다. 동학 관련 유물이 온전히 보전된 곳은 상주동학교당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합니다. 이 자료들은 서학(西學·천주교)에 반해 순수 우리 민족종교를 표방했던 동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데 유용할 뿐 아니라 우리 정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본보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변경에 머물러있던 상주동학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교주 김주희는 누구인지, 그는 왜 노선을 달리했는지, 당시 동학도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상주동학교당은 왜 상주의 외딴 산중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교당은 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많은 유물은 자그마치 100년 동안 어떻게 온전히 보전되어 왔는지, 그 유물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은 또 누구인지 등이 교당 건립 100년 만에 베일이 벗겨집니다. 동학의 사상이 본디 그러했듯 그 역사 역시 통섭(統攝·consilience)되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題字: 혜정 류영희

●논문 30여편·전방위 심층인터뷰 토대로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이번주부터 매주 토요일자에 7회에 걸쳐 연재될 ‘변경의 동학-상주동학 이야기’는 상주동학을 주제로 학계에 발표된 학술논문 5편과 함께 일반 동학 논문 26편을 1차로 검토했습니다. 그런 후 경상북도와 상주시가 발간한 상주동학 유물도록 등 간행물 6권을 참고했습니다. 그다음 상주동학 교주 김주희의 며느리 곽아기(89) 할머니의 기억을 토대로 그 직계 후손 5명을 심층인터뷰했고, 1915년부터 1943년 김주희가 체포되기 전까지 상주동학교당이 들어선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에서 집성촌을 형성해 살았던 동학교인 후손을 추적해 인터뷰한 자료를 씨줄과 날줄로 삼았습니다. 현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썼습니다. 이를 스토리텔링이라고 해도 좋고, 답사기라 해도 좋겠습니다. 7편의 이야기를 모아 들고, 상주동학교당을 방문하면 현장학습 자료로 그만일 것입니다. 2편부터 7편까지는 한국일보 인터넷판(www.hankookilbo.com)에 영문번역본도 동시 게재합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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