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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말이 곧 법" 보육교사 울리는 근로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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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말이 곧 법" 보육교사 울리는 근로계약서

입력
2014.10.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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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이 휴식·출퇴근 시간 등 조정, 보육 외 특별지시까지 명시

"태도가 불량하면 해고" 문구도… 내부고발자는 블랙리스트 올려

고용부 "당사자 합의" 규제 뒷짐

보육교사 A(44)씨는 올해 3월 부산의 한 사설 어린이집에서 일할 당시 1시간인 점심시간에 혼자 11명의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첫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도 포함됐다. 음식 맛이 없다며 반찬을 내던지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식사를 챙기고, 양치질을 시킨 뒤 낮잠을 재우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매일 오전 8시40분에 출근해 하루 9시간 넘게 일했던 A씨의 근로계약서엔 ‘휴식시간은 낮 12시20분부터 오후 1시20분’으로 명시돼 있었지만 이 시간에 쉬는 것은 불가능했다. A씨는 일한 지 한달 보름이 지난 뒤 원장이 내민 근로계약서를 보고서야 이런 불합리한 휴식 시간 조항에 대해 알게 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시간인데, 아이에게 밥 먹이는 근무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A씨의 근로계약서에는 ‘갑(원장)의 요구에 따라 을(보육교사)의 휴식시간은 물론, 출퇴근 시간도 조정하고, 을은 토요일ㆍ공휴일에도 근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A씨의 월급은 110만원, ‘상여금과 기타 수당은 없음이 원칙’이라고 적혀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5일 민주노총 등으로부터 입수한 부산지역 어린이집의 근로계약서 6건에는 이처럼 ‘갑’인 원장의 막강한 권한과 보육교사의 열악한 근로형태와 처우가 담겨있었다.

A씨의 근로계약서 3조에는 담당업무로 ‘보육 외 갑의 특별지시’가 명시돼 있었고, 8조에는 ‘계약서상 의문이나 정함이 없는 사항은 갑의 해석에 따른다’고 적혔다.

공공어린이집도 사정은 비슷했다. B(59) 보육교사는 오랜 경력을 가졌음에도 한 공공어린이집에 채용됐을 때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했고, ‘업무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태도가 불량하면 채용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부산의 또 다른 사립어린이집에 채용됐던 C(34)씨는 근무시간 규정 없이 휴식시간(1시간)만 정해진 계약서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을(보육교사)이 갑(원장)의 사업장에 지장을 초래하면 즉시 해고할 수 있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런 원장의 ‘제왕적 권한’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어린이집 내부의 각종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게 되고, 결국 원내 아동학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씨는 “원장은 우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기도 했고, 2세 여자 아이가 호기심에 교구용 싱크대에 들어가려 고개를 내밀자 등을 떠밀어 싱크대 안에서 2분 동안 울도록 내버려뒀다”고 말했다. 한 보육교사는 “원장들끼리 공유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나설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A씨는 유통기한이 사흘 지난 우유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부모가 늦게 찾으러 오는 아이에게 폭언 등을 한 원장을 고발한 뒤 수개월째 실직 상태다. 보육교사 7년차인 그는 “어린이집은 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면 곧장 연락이 오는데, 10여곳 넘게 지원서를 보냈지만 한 군데도 답이 없다”고 털어놨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계약서는 사업주와 당사자간 합의로 이뤄지는 것으로 규제를 할 수 없다”며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복지부가 실시하는 보육실태조사는 교사의 근무시간, 휴가현황 등만 다루는데 향후 근로기준법에 맞는 근로계약서 작성, 휴게시간 준수 등 노동권 관련 사안을 상세히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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