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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톨릭의 변화

입력
2014.10.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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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둘째 왕비 앤 불린은 매력덩어리였던 모양이다. 영화 천일(千日)의 앤이 전한 ‘비운(悲運)의 왕비’, 미국 드라마 튜더스의 ‘팜므 파탈’ 이미지가 끊임없이 교차하지만 어느 쪽이나 매력적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한 개인적 인상은 객관적 검증이 곤란하다. 그러나 절대군주의 상징적 인물인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그와 재혼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여성 편력이 심한 권력자조차 무리수를 둬가며 요구에 따라야 했을 만큼 앤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던 셈이다.

▦ 가톨릭 교회법은 이혼에 엄격하다. 지금도 결혼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입증, 교회법원의 결혼무효 판결을 얻어야 한다. 더욱이 캐서린의 친정인 스페인 왕가에 크게 의존한 로마교회가 헨리 8세의 이혼 요구에 순순히 응할 리 없었다. 결국 헨리 8세는 1534년 수장령(首長令)을 공포, 영국교회를 로마교회에서 떼어내 스스로 수장이 되었다. 로마교회의 손실은 컸다. 영국교회의 독립은 종교개혁 가속화의 한 요인이 됐다. 더욱이 강국으로 부상해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로 뻗어나간 영국의 힘을 활용할 수 없었다.

▦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가 중간보고서에서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금기시해 온 동성애와 비혼(非婚)동거를 부분 인정하고, 이혼절차 간소화 필요성에 언급했다. ‘동성애자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는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환영하는 교회를 원한다’, ‘너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가톨릭의 이혼절차에 대한 불만이 많다’, ‘안정적 수입과 일자리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비용문제로 종교의식을 생략한 채 결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등이다.

▦ 아직 조심스럽고, 19일 발표될 최종보고서에 그대로 실릴지, 내년 시노드에서 확인돼 최종 교리 변경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다만 이런 언급만으로도 가톨릭 교회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무성하다. ‘성인(聖人)도 시속(時俗)에 따른다’는 옛 가르침에 비추면 진화이고, 성적(性的) 소수자의 권리 측면에서도 발전이다. 의문은 남는다. 안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미 이혼과 비혼동거가 성행하는 세태에 교회의 변화가 현실적 의미를 띠기는 할까.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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