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전비 마련 옥죄는 효과도
글로벌 불황에 따른 수요부족, 미국 셰일원유 등 공급증가, 원유를 통해 적국을 제압하려는 정치적 술수가 ‘삼중 결합’을 이루면서 국제유가가 속락하고 있다.
1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 원유(WTI)는 전날보다 3.90달러(4.6%) 하락한 81.84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12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런던 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도 전날 대비 4달러 가까이 하락, 배럴당 85달러 초반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폭락 수준의 유가 하락은 수요부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내놓은 전망보고서에서 올해 하루 원유 수요가 9,240만 배럴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 추정치보다 20만 배럴이나 줄어든 것이다.
일부에서는 ▦9~10월은 정유사 설비 보수 기간이어서 예년에도 수요가 감소했었고 ▦국제원유시장의 강력한 공급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예전처럼 단합해 감산에 돌입할 가능성을 들어 유가의 반등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들은 OPEC의 단합 가능성을 배제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랍 산유국의 결속력은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크게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수요ㆍ공급의 경제논리보다는 ‘저 나라는 반드시 손을 봐주겠다’는 힘센 산유국의 정치적 의도 때문에 국제유가는 당분간 약세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서 ‘슈퍼 산유국’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이며, 이들이 각각 칼을 겨눈 상대는 당연히 러시아와 이란이다. 미국, 사우디는 원유를 수출해 전비를 대고 있는 IS 반군을 옥죄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가 이럴 수 있는 것은 같은 산유국이지만, 가격 변동에 대한 내성이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 투자은행인 BOA메릴린치에 따르면 이란과 러시아는 국가재정에서 원유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유가가 각각 배럴당 136달러와 105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재정균형이 무너진다. 반면 미국은 재정 상황이 국제유가 움직임과 무관하며, 사우디 역시 92달러 수준까지 유지되면 재정에 타격이 없다.
80달러 대까지 내려온 유가가 어느 수준에서 안정을 찾을지도 정치변수를 통해 대략의 예측이 가능하다. 바로 미국을 원유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만든 셰일원유의 생산원가(70~77달러)다. 실제로 WSJ은 “국제유가가 80달러 대로 내려가자 일부 셰일원유 생산업자들이 역마진을 이유로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미국 셰일가스 생산이 지속되고 사우디 재정도 흑자상태로 돌아서는 배럴당 90달러대 초반이 장기 균형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물론 국제유가 약세가 세계경제 전반에 긍정적이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장기적으로는 공급부족 현상을 유발시킬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FT는 이와 관련, “IS 등이 궁극적 목표인 사우디를 겨냥해 유전시설 테러를 감행할 경우 유가가 급반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저유가 장기화로 북극 심해유전(배럴당 생산원가ㆍ115~122달러), 오일샌드(89~96달러) 등이 투자대상에서 밀려날 경우 ‘수익감소→투자감소→생산감소’의 악순환에 따른 원유부족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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