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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의 전쟁… '엄마의 교육관'에 토 달기

입력
2014.10.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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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으로 들어앉은 지 꼭 4개월.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은 이제 아내도 감탄할 경지에 이르렀다. 각종 집안일은 멀티태스킹도 가능해 휴직 초기에 비해 비교적 여유도 있는 편이다. 아들과 하루 종일 말짱한 정신으로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게 피곤한 일이라면 일인데, 이 평온한 일상에 풍파가 다시 일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교육 문제다. 사실 이 아빠는 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그리고 신나는 1년’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고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어린 아들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줘야지, 필요 이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한 적 없다. 하지만 심상찮게 돌아가는 주변 상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아들과 나이가 같은 아이가 있는 한 지인이 영어 책값으로 수백만원을 지출했다는 이야기를 아내가 듣고 충격을 먹는 일이 발단이 됐다. 이 일 이후로 아내는 출근해서 일은 제대로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관련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더니 급기야 인터넷으로 아들용 영어책 주문도 몇 군데 넣었다.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첫돌 지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세상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당사자가 되고 보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먼저 키워낸 회사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최근 구입했다는 책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세상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당사자가 되고 보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먼저 키워낸 회사 동료들의 추천을 받아 최근 구입했다는 책들.

사실 ‘영어책 기백 만원’사태 이전부터 우리 집에도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단적인 예가 장난감이다. 우리나라 장난감 업체들은 무엇을 하는지(유통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절대적인 비율의 장난감이 외국산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씌어진 글도,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도 영어다. 백화점, 마트, 완구전문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구청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대여센터에서도 우리말 나오는 장난감은 찾기 힘들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현상을 반영한 것일 터.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고 애를 보고 있는 집이라고 해서 이 바람을 피해갈 순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아내를 통해, 이따금씩 마주치는 아줌마들에게서 듣는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은 관심이 아니라 집착 수준이다. 얼마 전 경험한 문화센터에서는 요일 개념도 잡히지 않은 아들 또래 아이들에게 ‘썬데이 먼데이…’ 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교사는 “또래 다른 반에서도 하는 노래”라고 강조하며 율동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물론 멜로디가 좋아서, 영어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환경 조성 차원 정도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깔끔하게 접었다.

밥하기 싫은 시월의 어느 날, 동네 죽집에서의 외식. ‘뻐~(버스)’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거금을 투입해 사다 준 타요북은 아들이 어디를 가든 갖고 간다. 그림책에다 밥도 먹이고, 공 놀이를 할 때도 이 책을 든 채 공을 찬다.
밥하기 싫은 시월의 어느 날, 동네 죽집에서의 외식. ‘뻐~(버스)’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거금을 투입해 사다 준 타요북은 아들이 어디를 가든 갖고 간다. 그림책에다 밥도 먹이고, 공 놀이를 할 때도 이 책을 든 채 공을 찬다.

얼마 전 TV 화면에는 참 묘한 장면이 중계된 적도 있다. 한 아이가 시끄럽게 영어로 말했는데, 상황에 맞지도 않고, 소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돼 결국엔 ‘헛소리’하는 아이가 됐다. 언어는 도구이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영어 교육의 목적이 전도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물론, 어린 아이가 사리에 맞지 않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영어를 이만큼 한다’는 식의 부모 자랑 도구로 전락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 앞에 다양한 것들을 풀어 놓고, 이것 저것 보이고 들려주면서, 또 같이 움직이며 놀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탐색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어른들이, 이 사회가 설정해 놓고 있는 ‘바람직한’ 것을 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을 때 이 나라는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중심을 잡는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반복해서 들리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이야기에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는 요즘이다. 주변 아줌마들의 치맛바람 때문일까. 올 가을이 더 쌀쌀하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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