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얼굴 속에 금속 이물질이 박혀 있지?
#사례 1
3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광대뼈 축소수술을 받은 A씨(36, 여)는 수술 후에도 여전히 두드러져 보이는 광대뼈 때문에 속을 앓았다. 기대에 못 미친 수술 결과 때문이었지만 신경 좀 썼다 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편두통 또한 고통스러웠다. A씨는 지난달 22일 광대뼈 재 축소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고 강남의 또 다른 병원을 찾았다. 상담 중 의사가 내민 X-ray 사진을 본 순간 A씨는 숨이 멎을 뻔 했다. 오른쪽 측두근(관자놀이)에 길이 1cm가 넘는 금속 막대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지난 3년간 자신을 괴롭힌 편두통의 원인이 부러진 수술용 드릴 팁(끝부분)이었다는 의사의 설명에 A씨는 경악했다. 제거 수술을 받은 A씨는 시끄러운 게 싫다며 3년 전 수술 받은 병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드립 팁 제거 수술을 집도한 지앤지성형외과 최봉균 원장은 “수술 도구가 부러진 사실을 집도의가 몰랐을 리 없다. 어떻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수술을 끝낼 수 있었는지 같은 의사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황당해 했다. 최원장은 이와 비슷한 몇 가지 사례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소개하고 있었다.
측두근에 박힌 드릴 팁, 3년 편두통의 원인
#사례 2
미국 유학중인 B씨(28, 여)역시 광대뼈축소 수술을 다시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왼쪽 안와골(눈 밑 뼈)에 금속 막대기가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술 당시 1mm만 더 깊게 들어갔더라면 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뻔 한 경우다. 수술 집도의가 뼈에 박힌 드릴 팁을 제거하지 않고 수술을 마무리해 버린 탓에 B씨는 10여 년 가까이 심각한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나이 들어 뼈가 녹게 되면 안구를 찌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
1mm만 더 들어갔다면 안구 손상 입을 뻔
#사례 3
10년 전 부산의 한 개인병원에서 사각턱 수술을 받은 초등학교 교사 C(34, 여)씨는 원인 모를 통증 때문에 10년을 시달렸다. 내과와 이비인후과를 줄기차게 다녀봤지만 목을 조이는 통증의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치과 치료를 위해 우연히 촬영한 X-ray 사진에서 왼쪽 턱뼈에 박힌 지름 1cm 정도의 톱니바퀴를 발견했다. 톱니바퀴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뼈를 절단할 수 있는 수술용 전동 톱의 일부다. 뼈를 자르거나 뚫는 데 쓰이는 드릴과 톱, 버(burr)와 같은 수술도구는 대부분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다. 최원장은 “티타늄과 달리 뼈나 근육 속에 오래 방치할 경우 염증과 통증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턱뼈에 박힌 원형 톱니, 목 조이는 통증 유발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치명적이고 고의성까지 의심되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벌써 10여 년 전 일인데다 환자들이 공개를 꺼리고 있어 수술 집도의 당사자의 해명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연세대 의대 성형외과 김영석교수는 “수술도구가 부러지거나 깨지는 일은 간혹 일어난다”라며“금속 파편이 보이지 않거나 기구가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이 박혀 당장 제거가 어려울 경우 환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추후 해결을 약속하는 게 맞다. 그러나 환자나 보호자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다 자칫하면 의료사고로 몰리는 일이 많다 보니 차라리 숨기는 편을 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몇몇 의사는 일명 ‘섀도우 닥터(Shadow Doctor·대리 의사)’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섀도우 닥터란 환자와 상담한 유명 의사 대신 실제 수술을 집도하는 신참 전문의나 비전문 의사를 말하는데, 자신의 명성이 걸린 수술이 아니므로 책임감이 덜한데다 고용 의사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과실을 덮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의사의 실수? 알고서도?
90분간 ‘들은 풍월’로 수술도...
진료과목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얼굴 뼈를 다루는 양악 안면윤곽 사각턱 광대뼈축소 수술 등은 거의 모든 과정이 입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렵고 까다롭다. 뼈 절단도 상당 부분 감에 의존해야 하고 수술 중 혈종(피고임)이 생기거나 수술부위가 부어 올라 기도를 막을 수도 있다. 어려운 수술일수록 풍부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전문의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는커녕 수술 방법을 말로만 전해 듣고 수술을 집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얼굴 뼈 수술분야에서 정평이 난 D원장은 어느 날 알고 지내던 E원장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돌출 입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여태껏 해 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다며 수술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수술날짜는 바로 다음 날. 황당했지만 친분을 거스를 수 없었던 D원장은 커피숍에서 약 한 시간 반 동안 수술법을 전수했다. 다음 날 E원장은 ‘들은 풍월’로 수술을 마쳤고 결과는 물론 좋지 않았다. 더 황당한 사실은 이 병원 광고에 이미‘돌출 입 수술 전문’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료법상 의사는 어떤 진료든 가능
수술 받기 전 의사의 질을 파악하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인구 1만 명당 미용성형수술 건수 131건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돈벌이 되는 성형수술로 영역을 넓혀가는 성형 비전공 전문의들도 늘고 있다. 의료법상 의사는 전공과목에 상관없이 모든 과목을 시술할 수 있기 때문에 외과 의사가 유방성형 수술을 할 수 있고 비뇨기과 의사도 쌍꺼풀 수술을 할 수 있다. 일부 치과의사는 사각턱과 광대뼈 축소수술도 하고 있다. 신고된 진료과목이면 광고도 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미용시설과 관련한 소비자 유의사항을 통해 ‘시술 결정에 앞서 담당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인지, 수술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주요 시술분야는 무엇인지 확인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수술은 전공이 아닌 경험과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누가 수술을 집도하든 간에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환자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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