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사이버 검열과 인권의 후퇴

입력
2014.10.14 20:00
0 0

근대헌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 것에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 국가가 함부로 개인을 구금하거나 소유물을 침탈할 수 없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이 권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려가며 싸웠던 것이다. 근대시민혁명 이후에도 자유가 좀 더 보호되는 방향으로 전진을 거듭했다. 한국만 해도 국가가 시민들을 함부로 가두거나 소유물을 침탈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됐고, 이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진전’을 입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며칠째 언론지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이버 검열’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자유’의 측면에서 오히려 후퇴한 것인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사이버공간에 대한 압수ㆍ수색의 법과 관행은 현실공간과 비교해 보면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실 공간에서의 압수ㆍ수색은 꽤나 까다롭다. 꼭 필요한 만큼만 구체적으로 범위를 특정해야 법관이 영장을 발부해 준다. 당사자에게 미리 집행 일시ㆍ장소를 통지하고, 발부받은 영장을 제시한 뒤, 당사자와 변호인이 보는 앞에서 필요한 물건만 가져가는 절차를 밟는다. 때로는 영장에 기재된 물건인지 아닌지 여부를 두고 현장에서 변호인과 수사관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수사목적과 시민의 권리 사이에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에서는 수년간의 이메일 내용 일체 등 광범위한 내용을 싹쓸이 하듯 가져가기도 하고, 긴급을 요한다는 등의 이유로 당사자도 모른 채 압수ㆍ수색이 이뤄지기 일쑤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걸 왜 가져가냐’고 항의할 기회조차 없이 뒤통수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가게 되지만, 이 정보들 중 범죄혐의 규명에 사용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경우에는 범죄와 무관한 상대방의 정보까지 압수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무슨 대역죄라도 범한 경우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번 문제가 된 사건들은 그저 신고되지 않은 집회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던 경우였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메일이나 카톡 대화의 내용이 통째로 털리는 것은 집에 있는 물건 모두를 빼앗기는 것과 진배없다. 당사자가 느끼는 심리적, 실질적 피해 정도는 오히려 더 클 지도 모른다. 자신의 메신저에 담긴 내용이 털렸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발가벗겨져 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신고되지 않은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이런 정도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실공간에서 꾸준히 진전돼 왔던 국가와 시민 사이의 힘의 균형이 사이버공간에서는 무너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공간에서도 시민의 권리는 변함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가 사이버공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인권보호수준은 현실공간에 준하는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통신 감청의 경우 내란, 외환,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등 요건과 절차가 엄격하다. 통신 감청과 이메일ㆍ메신저 압수를 비교하면 후자의 인권침해 정도가 더 낮다고 보기 어렵다.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대한 압수ㆍ수색의 경우에도 최소한 통신 감청에 준하는 정도의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사이버공간에 대한 압수는 일단 다 들고 가고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함을 물론이고, 법원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사법부의 책임자들이 영장 집행방법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변하는 장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사이버공간의 특성상 포괄적 압수와 선별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이버공간에서 인권을 보호받기 위한 방법이 현실세계에서와 다를 리 없다. 인류 역사상 국가권력이 자신의 권한을 알아서 축소하거나 자발적으로 통제당한 경우는 없었다. 시민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나섰을 때 마지못해 조금씩 양보를 거듭했을 뿐이다. 사이버 망명?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